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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야기] 정의를 위해 희생한 '정의'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김현지 EWB 간사 | 승인 2017.12.29 12:02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블레즈 콩파오레(왼쪽)와 프랑스와 콩파오레 (사진=Kibraya.com)

[뉴스인] 김현지 = 지난 10월 29일 코트디부아르에서 망명중이던 블레즈 콩파오레(Blaise Compaore) 부르키나파소 전 대통령의 동생 프랑스와 콩파오레(Francois Compaore)가 파리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블레즈 콩파오레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영웅적 인물로 칭송받는 토마 상카라(Thomas Sankara) 전 대통령과 함께 혁명을 주도했으나, 1987년 혁명 동지 상카라를 살해한 이후 2014년까지 장기집권한 인물이다.

그는 결국 수도 와가두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피의 시위에 떠밀려 코트디부아르로 망명하는데, 이 때 ‘작은 대통령’이라 불렸을 만큼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프랑스와 콩파오레 역시 형의 뒤를 따르게 된다. 자국의 심판대를 피해 풍요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그가 갑작스럽게 체포된 배경은 무엇일까.

◇ 한 편집장 이야기

카메룬에서 저널리즘 유학을 마친 한 기자가 고향 부르키나파소로 돌아온다. 그는 실력을 인정받고 곧 유명 신문사에 취직하지만, 콩파오레 독재정부의 끝없는 언론탄압 때문에 기자로서 본분을 다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1993년 그는 독립 주간지 랑데뻥덩(I’Independant)을 창립하여 주필로서 활약을 펼친다. 엉리 세그보(Henri Segb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노베르 종고(Norbert Zongo)의 이야기다.

이때부터 종고는 정부의 만행을 거침없이 세상에 알린다. 물론 그는 그깟 필명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지면에 실린 글들은 고스란히 자기 신변에 위협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94년 종고는 랑데뻥덩지 사설에 자기 어머니와의 대화 일부를 싣는다. "아들아, 사람들이 내게 와서 그러더구나. 네가 대통령에 대한 글을 써서 네 목숨이 위험하다고. 그들은 대통령이 너를 감옥에 가두는 데 그치진 않을 거라고, 너를 죽일거라고 말했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애원하니 아들아, 제발 글 쓰는 걸 그만해다오."

노베르 종고와 그의 어머니 오기스틴 종고(Augustine Zongo) (출처=www.droitlibre.net)

1998년 12월 13일 종고는 세 명의 일행과 함께 차를 타고 싸뿌이(Sapouy)라는 지역을 지나게 된다. 당시 종고는 프랑스와 콩파오레의 운전기사 다비드 우에드라오고(David Ouderaogo)의 사망사건을 1년째 조사하고 있었다. 우에드라오고는 사망 전까지 프랑스와 콩파오레의 아내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아 구속돼 있었는데, 그가 심한 고문으로 사망한 정황들이 종고의 끈질긴 추적 끝에 하나씩 드러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날 싸뿌이에서 의문의 차사고가 일어나, 종고를 포함한 네 명 모두 사망한다. 이로 인해 우에드라오고 사망사건 취재 역시 종결된다.

그러나, 단순 교통사고라고 하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차 뒷문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했고 차체 주변엔 탄피들이 발견됐다. 또 네 사람의 시신은 화재 속에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런 그의 죽음이 알려지기 무섭게 부르키나파소에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 시간이 가도 여론은 멈출 기색 없이 들끓었고, 언론인보호협회(CPJ), 국경없는 기자회(RSF) 등 권위있는 국제 비정부단체의 비판도 계속됐다. 이를 의식한 콩파오레 전 대통령은 수 개월을 버티다 결국 수사위원회 결성을 허락하게 된다.

쌉뿌이 지역 종고 일행이 암살당한 지점에 그를 기리는 팻말이 세워져있다. (출처=www.cameroonvoice.com)

2001년 법원은 대통령 경호부대(RSP)의 특무 상사 마르셀 카판도(Marcel Kafando)를 종고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는데, 당시 카판도는 이미 기사 우에드라오고의 죽음과 관련해 심한 고문 및 살해 혐의로 20년 형을 받은 상태였다.

이에 언론자유를 수호하는 비영리기관들은 "대통령 특무관인 카판도가 배후 없이 움직일 수 없다"며 콩파오레 형제의 책임을 추궁하지만,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를 조롱하듯 카판도마저도 2006년 면소 판결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

◇ 종고로 시작된 자유와 정의의 바람

사건은 이대로 덮히는 것 같았지만, 종고의 죽음은 부르키나파소 국경을 넘어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가 생전에 남긴 "최악이란 악한 사람의 악행이 아니고 선한 사람의 침묵이다"라는 말처럼 선한 부르키나파소인(부르키나파소의 국명은 현지어로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the land of upright people)’라는 뜻)들은 지치지 않고 언론자유와 정의 구현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12월 13일 종고의 기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의 고향 쿠두구(Koudougou)지역을 중심으로 언론자유와 종고 사건 재수사를 외치는 시위가 열린다. 이런 노력 끝에 부르키나파소의 언론법이 개정되는 등 언론탄압이 눈에 띄게 완화된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매년 상승세를 올리던 부르키나파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79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이는 불어권아프리카 국가 중 1위,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4위라는 놀라운 기록이다. 세계적으로도 미국(43위), 우리나라(63위)와, 일본(72위)같은 여타 경제선진국을 앞질렀다.

문맹률이 70%에 달하고, 1인당 GDP가 600달러를 웃도는 부르키나파소에선 신문사를 경영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는 더욱 놀라운 순위가 아닐 수 없다.

RSF에서 발표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언론자유지수' (출처=RSF)

종고의 죽음으로부터 19년이 지난 2017년, 세상이 그의 이름을 점점 잊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프랑스에서 들려온 프랑스와 콩파오레 체포 뉴스가 다시 부르키나파소를 흔들었다.

그는 하루만에 풀려나는데 그쳤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정의의 불씨를 지켜온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에게는 작은 승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프랑스와 콩파오레의 범죄인인도를 강력히 요구하는 지난 13일의 시위는 평소보다 더욱 뜨겁게 불탔다.

"시간이 가도 정의는 남아 있다"라고 적힌 시위 안내 포스터 (출처=Oxford Human Rignts H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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