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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이야기] 부르키나파소에선 무슨 일이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박수정 EWB 국장 | 승인 2018.02.19 15:33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마크롱 대통령 방문 전 와가두구 시내에는 시민들의 시위와 교통 통제로 정신이 없다. (사진=박수정)

◇부르키나파소, '테러 발생에 주의 경보'

지난해 11월25일 핸드폰으로 경보 알림이 울리고 이메일로는 테러 발생 위험이 있으니 외부 출입을 삼가라는 연락이 왔다.

잇달아 부르키나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 내에 있는 모든 학교들은 이틀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도시 내 많은 주요 도로가 통제되어서 막힌 도로를 우회해 달리는 자동차들로 꽉 찼다. 거리마다 검은 총을 둘러메고 삼엄하게 살피며 경계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와가두구 대학이 자리한 큰 대로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열었다. 부르키나파소 출장 중에 받은 위험경보라 대체 무슨 일인지 긴장이 됐다. 갑자기 대체 무슨 일 인걸까?

아프리카의 체게바라’ 라고 불리는 부르키나파소의 혁명가이자 국민적 영웅, 토마스 상카라 대통령. (출처=The Guardian)

◇ 前 식민통치국가였던 프랑스의 대통령 방문

이 모든 난리의 원인은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프랑스의 대통령 마크롱의 방문이었다. 온 신문이며 라디오며 마크롱의 방문에 대해 끊임없이 보도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비롯해 가까이서 만난 부르키나파소 친구들은 일을 하고 식사를 하면서도 라디오를 크게 켜서 계속 주의를 기울일 정도로 큰 관심사였다. 프랑스 대통령의 부르키나파소 방문은 그 어떤 나라의 대통령 방문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사실 부르키나파소는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1960년도가 돼서야 오트볼타라는 이름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다. 1984년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부르키나파소 라는 국명으로 바뀌었다.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 보호령이었던 탓에 여전히 행정시스템을 비롯해 문화에서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60여개가 넘는 부족어가 있을 만큼 다양한 종족이 있지만 공식적인 공용어로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은 마크롱의 방문 기간 동안 시위와 파업을 벌이는 등 반(反)프랑스 의지를 표출했다.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가 보인 신식민주의적 행태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격의 국민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국민 영웅 토마스상카라 대통령 암살사건의 배후가 프랑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상카라 대통령은 33세의 나이로 1983년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로서 상당히 개혁적 성향을 띄고 4년간 집권했다. 자신의 조력자였던 블레즈 콩파오레에게 살해당하면서 부르키나파소 국민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블레즈 콩파오레의 27년이라는 긴 독재 정권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의 진짜 배후가 프랑스 정부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외세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부의 올바른 분배를 통해 자급자족을 목표로 했고 실제로 달성해 냈던 토마스 상카라에 비해, 블레즈 콩파오레는 프랑스와 상당히 친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기득권층에게 눈에 가시와도 같았던 토마스 상카라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프랑스가 블레즈 콩파오레를 도왔다는 것이다.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은 토마스 상카라 살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해왔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를 알고 보면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이 가진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음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와가두구에는 ‘샤를 드 골’ 대로(Boulevard, avenue)가 크게 뻗어있다.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은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프랑스 경제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부르키나파소 국민들은 수도 한 가운데 크게 뻗은 이 샤를드골 대로의 이름을 토마스 상카라 대로로 바꾸기 위한 시위를 계속 벌이고 있다.

와가두구 대학 내에서 연설 및 질의응답(Q&A)세션을 진행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 (출처=https://www.elbalad.news/3055958)

◇조롱거리의 대통령, “에어컨이나 고쳐...”

이러한 난리통 속에 마크롱 대통령은 와가두구 대학 내에서 청년들과 직접 대면하여 질의응답 세션을 열었다. 마크롱의 연설과 세션은 라디오를 통해 전달되었고 지직거리는 라디오 너머 현장의 뜨거운 열기와 긴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청년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토마스 상카라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세파프랑을 쓰는 통화(Currency)에 대한 질문, 실업문제와 전기 에너지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질문을 던졌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장내 분위기는 들썩 들썩 하였고, 심지어 통제가 되지 않아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여러 질문 중, 전기문제와 실업문제 등 부르키나파소 국내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마크롱 대통령은 “내가 아직도 부르키나파소에 식민지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듯이 내부 문제를 내게 제기하는데, 그런 문제들은 부르키나파소 대통령이 해결할 일이지, 나한테 물어볼 질문이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전기 문제에 대해 얘기하다가 자리를 일어나는 카보레 대통령을 손으로 가르키며, “대통령이 지금 에어컨을 고치러 간다”고 비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 대학 입구 앞에 걸린 프랑스 대통령 맞이의 현수막과 모여있는 청년들. (사진=박수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부르키나파소의 테러에만 집중

이에 대해 라디오를 함께 듣고 있던 현지 동료들은 부르키나파소 대학생들의 정제되지 않은 질문 표현에 대해 염려를 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이럴 때라도 저렇게라도 할 말은 해야지’라는 듯 오히려 직설적인 표현에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옆에 함께 있던 나 역시도 마크롱과 같은 입장으로 왜 이런 문제를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따지고 묻는 건가 싶다가도, 사실 현재 부르키나파소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프랑스로 인해 기인한 것이 많고, 여전히 프랑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나아가 마지막에 마크롱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보며 에어컨을 고치러 나간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은 깊은 어딘가에 굉장한 거만함이 깔려있고 이미 부르키나파소를 낮춰 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과거의 역사적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 국민들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과 발언을 일본 정부로 대입해보면 어떨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 발언은 굳이 일본에 대입하지 않더라도, 그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와서 우리 나라의 대통령에게 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르키나파소를 검색하면 볼 수 있는 많은 뉴스 기사들은 마크롱 방문에 반감을 가진 시민 일부가 던진 돌덩이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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