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진 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걸작을 철학으로 재해석한 『드라이브의 칼날』 출간

[뉴스인] 정지영 기자=2016년 BBC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선’ 1위.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2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석 불가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꿈인지 현실인지, 기억인지 환상인지, 배우 베티는 왜 다이앤이 되고, 카우보이는 왜 나타나는가.
수많은 해석이 쏟아졌지만 누구도 “이게 정답이다”라고 단정하지 못했다.
25년 차 영화감독 사유진이 그 불가능한 영화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31명의 철학자를 소환해 칼날처럼 날카롭게 쪼개고 다시 붙였다.
결과물이 바로 『드라이브의 칼날』(2025년 11월 출간)이다.
“영화는 철학이 구체화된 형상이다.” 저자는 이 한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라캉의 거울 단계, 들뢰즈의 리좀, 데리다의 해체까지, 고대에서 현대를 가로지르는 사상사 흐름을 한 편의 영화에 투사한다.
그런데 이 책이 놀라운 건, 철학이 영화의 ‘설명 도구’로 동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영화가 철학을 부르고, 철학이 다시 영화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다.
구성은 아예 영화처럼 짜여 있다.
‘크랭크 인’ → ‘오프닝 씬’ → ‘메인 씬’ → ‘크랭크 업’. 각 장은 린치의 몽타주처럼 끊기고 이어지며, 독자는 어느새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밤길을 함께 달리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환원의 철학’은 이 책의 진짜 칼날이다.
반복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시지프스와 프로메테우스가 매일 새롭게 시작하듯, 자기 파괴를 통해 재창조되는 운동이라는 것.
“You drive me wild”라는 대사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내면의 드라이브(충동·욕망·창조력)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폭발하는 순간이라는 해석은 소름 돋을 만큼 날카롭다.
충무로 조감독 → 다큐멘터리 감독 → 시네-댄스 작가로 25년을 달려온 사유진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론가’의 얼굴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감독의 감각이 살아 있다.
문장마다 장면이 보이고, 문단마다 컷이 바뀌며, 독자는 철학서를 읽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린치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린치와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 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정답이 없다.
대신 수많은 질문과 함께, 우리가 매일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무엇을 상상하고 욕망하는지 조용히 묻는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열 번 이상 돌려본 사람, 철학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삶의 질문이라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드라이브의 칼날』은 2025년 겨울, 가장 날카롭고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이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드라이브의 칼날』 사유진 지음 | 368쪽 | 2025.11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