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비형식교육증진회 총회에서 인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김현지)

[뉴스인] 김현지 = 인턴이란 이름은 많은 걸 의미한다. 필자가 보고 겪은 인턴은 당장 ‘취준생’은 면했지만 사회인이라고 하기엔 어설픈 위치의 청년들이다. 채용전환형이 아니고서야 곧 회사를 떠나야 하는 신세지만, 상사에게 미운털만은 안 박히려 눈치코치 살피랴, 이것저것 배워가랴 분주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의 민낯을 보며 실수가 용납되던 학생신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사회초년생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문화, 부르키나파소의 인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국경없는교육가회 부르키나파소지부와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는 비형식교육증진회(APENF) 두 명의 인턴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 계약기간 끝났는데 계속 일하러 나오는 파팀

부르키나파소 인턴들은 대부분 무급이다. 학기 중 인턴을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라서 시험 준비, 과제 제출을 하느라 며칠간 회사에 안 나오기도 하는데 다들 이해해 주는 분위기이다. 필자가 부르키나파소에서 처음 만난 인턴은 사회학 전공 대학원생이면서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인 파팀이다.

파팀은 모니터링 부서 인턴이지만, 주업무는 사무국장의 비서가 부재중일 때 그 역할을 대신하고, 비서의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보고서 자료정리도 보조하고, 원하면 모니터링을 함께 갈 수도 있지만 숙식해결은 자기 몫이다. 그녀가 주로 했던 잔심부름이란 사수의 휴대폰 요금을 충전해 오는 것, 식사배달 담당 경비원이 없을 땐 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회사 사람들의 식사를 배달하고 세팅하는 것 등이다.

파팀은 인턴 계약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자발적으로 출근했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여기서 일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고 말했다. 기관에 큰 행사가 있어 일손이 부족할 때도 파팀은 발 벗고 나서서 도왔다.

그녀는 회사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매우 편안한 관계를 유지했다. 잔심부름을 꼬박꼬박 해오면서도 별걸 다 시킨다며 스스럼없이 상사에게 장난을 치기도 했고, 모니터링에 따라와선 귀퉁이 책상을 차지하고 앉아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열심히 자기 석사논문 작업을 했다.

파팀이 아팠을 때 회사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안부전화를 걸었고, 파팀의 직속상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파팀의 집에 약을 배달해 주기도 했다. 아침인사 시간이나 점심시간 파팀은 회사 식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학교 시험 이야기, 자녀 이야기, 학점을 짜게 주는 교수님 이야기,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 등. 회사 사람들은 파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파팀이 모니터링에 따라갔을 때 모니터링 부서 동료직원, 파팀, 기사와 나 넷이서 조촐한 회식을 한 적이 있다. 식사를 끝내고 영롱한 별들 아래 탄산음료 한잔씩을 시켜놓고 본격적으로 파팀의 고민 상담 시간이 시작되었다. 경청과 진지한 충고, 한탄이 오갔다.

그러다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우리는 실현 불가능한 충고를 농담 삼아 늘어놓으며 파팀에게 웃음을 주려고 했다. 정규직 직원, 운전기사, 외국인 봉사단원까지 합세해 인턴의 인생 얘기를 들어주며 웃음꽃을 피운 조촐한 그날 저녁은 한국 인턴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신선한 회식이었다.

◇ 상사 보는 앞에서 페이스북을 한다고?

파팀의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회계팀 인턴이 새로 왔다. 비형식교육증진회 회계담당 직원 이름은 실비였는데, 그 직속 인턴으로 동명의 실비라는 대학 졸업생이 들어왔다. 우리는 두 사람을 부를 때 헷갈리지 않기 위하여 직원은 ‘그랑 실비(큰 실비)’, 인턴은 ‘쁘띠 실비(작은 실비)’로 구분해 부르곤 했다.

쁘띠 실비는 주로 수표 복사, 출장명령서를 떼 주는 행정 업무, 은행 업무를 한다. 기관 구조조정으로 경비원이 줄어든 요즘엔 식사배달까지 실비가 챙길 때가 많다. 실비는 일이 없을 때 사무실 귀퉁이에 앉아 신문이나 페이스북을 보며 회계담당 직원들에게 그날의 이슈를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그러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시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며 화답한다. “그래서 범인은 잡았대?”, “그런 건 얼마에 팔린대?” 분주함 속에서도 대화가 끊이질 않는 회계팀 사무실은 늘 화기애애하다.

기관 자체가 워낙 편한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대다수의 다른 나라에서도) 어찌됐든 상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인턴이 한가하게 페이스북을 하며 수다 떤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일 거다.

친한 현지인 동료들과 인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곳 비형식교육증진회 인턴들은 비교적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부르키나파소의 다른 회사에서는 몇 달 내내 인턴들에게 주는 일이라곤 세차와 청소, 잔심부름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반면 이곳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인데다 심부름만 하는 게 아니라 실무까지도 배울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정규직도 월급을 제대로 못 받거나 아주 적은 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인턴이 무급인 게 뭐 그렇게 놀라운 일이겠는가. 일자리가 충분히 생기고, 무보수 인턴십이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도록 이 나라 경제가 무럭무럭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그 따뜻함은 그대로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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