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가봉 ITA 학교 학생들이 교내 장비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김현지)

[뉴스인] 김현지 = 아프리카에 특별히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분야별 유명한 아프리카인 한둘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인으로는 넬슨 만델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네그리튀드(Negritude)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메 세제르나 레오폴드-세다 셍고르를 들어 봤을 거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과학자를 묻는다면?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필자부터 대답하기 어렵다. 문과 출신이라 해당 분야에 무지한 탓도 크지만 아프리카 출신 과학자가 현저히 적은 것도 사실이다.

◇ 과학인을 대하는 아프리카의 자세

세계가 R&D(연구개발) 분야에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하며 앞다투어 기술발전을 이루어내는 동안, 현재를 운영하기도 버거웠던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들은 미래 산업에까지 발을 들이지 못했다. 최빈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필자가 지난 2015년 중앙-서아프리카 국가로는 유일하게 OECD ‘상위 중소득국(upper middle-income country)’으로 분류되어 있는 가봉에 방문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봉 고등교육기관 중 공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인 ITA, 국립 의대인 오마르 봉고 의과대학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실험장비와 시설들은 학생들의 학구열을 뒷받침하기에는 열악해 보였다. 가봉 최상급 병원인 오마르 봉고 군병원에 견학 갔을 때에는 최첨단 의료장비를 들여놓았으나 정작 이를 다룰 줄 아는 의료 인력이 없어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안타까운 상황을 보았다.

현재로서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른 경제선진국처럼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현실과의 괴리를 고려하지 않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간 겪게 될 변화에 앞서 터를 일구는 작업은 빠를수록 좋다.

확실한 것은, 아프리카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존의 과학 기술 의료 종사자들을 지금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대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발전과 인력 유입에 돈을 쓰기 이전에 기존 이공계 종사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조정해야 한다.

2016년 의사조합원들이 임금상향조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lefaso.net)

◇ 시대 흐름에 반하는 ‘이공계 기피’

프랑스 교육 과정을 따르는 부르키나파소의 경우 문과계열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는 직군은 사법관으로, 대학시험 바칼로레아 합격 후 4-5년을 더 공부하고 약 50만 세파(한화 약 100만원)정도의 초봉을 받는다. 반면 어문계와 이공계를 통틀어 학업기간이 가장 긴 직업인 의사의 경우, 7년을 의무로 공부해야 하는 일반의의 초봉이 20만 세파(한화 약 40만원)가 채 안 된다.

다른 직군에 비해 확연히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비리 사건을 심심찮게 터뜨리는 사법관은 연봉인상을 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하여 국민들의 원성을 사는 한편 오랜 학업에도 불구하고 적은 급여에 초과근무를 밥 먹듯 하는 의사들은 정작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많은 사하라이남 국가들의 공통된 실정이다.

이러니 시대 흐름에 반하는 아프리카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조금도 놀랍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주가봉 한국대사를 만났을 때, 가봉에서는 아직도 문과는 ‘대접받고 일하는 화이트칼라’, 이과는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로 인식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최근 국경없는교육가회 출장팀과 함께한 부르키나파소 교육부장관 면담 자리에서 장관 역시 과학기술분야 교사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란 데다 지원 학생 수마저 점점 줄어드는 것이 큰 문제라고 털어놓았다. 똑같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하는데 이공계를 택했을 때 학습 환경이 더 열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더 가난하다면, 적성과 별개로 문과계열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이공계 기피현상’은 아프리카만의 문제였던 건 아니다. 30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현재는 눈에 띄게 입지가 줄어든 법학과와 영문과가 당시 인기 학과였던 한편 대다수의 이공계 학과들은 지금처럼 선호되지 않았다. 과거 기준으로 짜인 학사구조는 인력수급 불균형과 높은 청년실업률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제 와 다급하게 손보자니 뒷감당은 고스란히 학생과 대학의 몫이 되어 사회갈등으로 깊어져갔다.

아프리카의의 경제가 뒤쳐져 있다고 해서 다른 경제선진국들이 겪었던 시행착오까지 똑같이 거쳐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선례를 보고 피할 것을 미리 피하고 더욱 명민하게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아야 경제성장 또한 발 빠르게 따라올 것이다.

미국은 졸업 후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상위 20개 학부 전공이 모두 이공계열일 만큼 해당분야 대우가 남다르다. 이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각 정부가 세계의 수요와 흐름에 부응하도록 직업군의 사회적 위치를 재조정하여 향후 아프리카의 인력수급 불균형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소한 직업군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측면에서도 이공계 직군 보수 재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공부에 투자한 시간이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분야 교육은 머지않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아프리카는 그 어느 곳보다도 과학기술이 필요한 땅이다. 경제선진국에서는 기술 과잉(technology overload)이라는 말이 나올 지경에 이른 반면, 아프리카엔 기후, 환경, 농축산업, 풍토병 등 과학기술이 도전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라이베리아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lateranga.info)

“아프리카는 가난하지 않다. 다만 어설프게 관리되었을 뿐이다(Africa is not poor, It is poorly managed).” 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정말 가난하지 않아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난의 여부를 떠나서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분배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가난의 여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대륙’이라는 아프리카의 화려한 타이틀이 기대대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지, 손쓸 수 없는 인력수급 불균형과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이제 아프리카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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