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해가 뜨기 시작하는 이른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한다. (사진=박수정)

[뉴스인] 박수정 = 팀캇(Timkat)은 에티오피아의 주현절(The Ethiopian Epiphany)로 영어로는 ‘Baptism(세례)’을 뜻한다. 예수가 요단(Jordan)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매년 1월 19일(윤달의 경우 1월 20일)부터 3일간 열리는 축제이다.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물론, 에티오피아에 있는 랄리벨라(Lalibela), 악숨(Axum), 곤도(Gondor) 등과 같은 종교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팀캇이 열리기 전부터 각 정교도 교회에서는 성서도 읽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행사를 준비한다.

팀캇이 시작되기 전 각 교회별로 흰 천에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자수가 놓인 전통 옷을 맞춰 입고 밤새 걸으며 기도하기도 하고, 팀캇의 장소까지 행진하는 전야제 퍼레이드가 열린다.

보통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새벽 2시부터 팀캇 장소로 향하는데 나는 너무나 졸려서 새벽 4시에나 겨우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각지에서 많이 모인 터라 차량 접근이 어려워 그나마 가장 근처에 내려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아디스아바바의 모든 인구가 모였나 싶을 정도였다. 십자가 모양의 풀(pool)이 있는 작은 건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사방으로 모인다.

기도와 노래는 큰 스피커로 쩌렁쩌렁 울린다.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두 손 모아 얼마나 열심히 따라 하며 기도하던지, 당최 무슨 말인지 내용도 알 수 없던 내게도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그나마 쉬웠던 ‘하~ 호~(haaa hooo)‘ 부분만 열심히 따라 불러봤다. 새벽부터 시작된 기도는 해가 중천에 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회별로 다른 옷을 맞춰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며 찬양한다. 박수도 치고 대형에 맞춰 춤추고 흥겨운 시간이다. (사진=박수정)

기도의식 후에는 예쁘게 옷을 맞춰 입은 교회인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여기저기 신명 나는 박자와 함께 전통악기 연주가 시작되고, 특히 어린 친구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더불어 맛있는 에티오피아 음식 파티도 함께 열린다. 당나귀를 타고 다닐 수도 있다.

축제는 온 도시 전체에서 열리는 듯했다. 평소 자동차와 매연으로 가득했던 도로에는 형형색색의 거리장식과 웃음 가득한 사람들로 가득해 축제다운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기도 시간 후에는 성수(Holy water)를 한 방울이라도 맞기 위해 몰려든다. (사진=박수정)

◇ 이 성수(holy water)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

내가 뽑은 팀캇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성수(holy water) 샤워’였다. 팀캇은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기도 후 참가자들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듯 성스러운 물이 뿌려진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물을 받으면 자신의 속죄(sin)를 씻을 수 있고, 아픈 병이 치료된다고 믿는다. 지역에 따라 실제로 물로 뛰어 들어 샤워를 하기도 한다. 이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팀캇에 참가하며, 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을 오기도 한다.

내가 참가했던 아디스아바바 팀캇에서도 기도 후 물을 뿌려줬다. 수많은 인파가 성수 샤워를 위해 한 데 몰리는 바람에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린 자녀들을 무등 태워 한 방울의 성수라도 맞게 하고픈 부모들과 펴지지도 않는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해 성수를 향해 손을 높이 치켜드는 할아버지들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들의 눈과 손끝은 그저 성수로만 향해 있었다. 순간 알 수 없는 절실함과 진지함에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 성수를 뿌리는 사람 바로 앞까지 전진한 나는, 미리 챙겨온 빈 생수통을 건네며 성수를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운이 좋게도 한 통 가득 성수를 담아와 소중하게 한국으로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미리 챙겨간 생수통에 성수(holy water)를 가득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고사 지내는 마음으로 에티오피아에서의 사업 성공을 기대해본다. (사진=박수정)

◇ 종교 그 이상의 의미

팀캇은 정교도 최고의 축제이지만, 에티오피아에서 정교도인은 인구의 43%가량일 뿐이다. 팀캇은 정교도인이 아니어도 모두 함께 참여한다. 팀캇 의식 이후에는 모든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에티오피아의 최고의 축제이자 명절이기도 하다.

평소엔 차로 가득했던 거리가 오늘만큼은 차 없이 사람들로 북적여서 제법 축제 느낌이 물씬 난다. (사진=박수정)

앞서 이 지면을 통해 에티오피아만의 특별한 시간과 달력체계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한 국가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많은 사회적 시스템과 문화, 관습, 행동방식에서 종교가 단순 종교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만난 에티오피아 친구들과 동료들은 내가 어마 무시한 태풍을 만나 비행기가 추락할 것만 같았던, 인생 살며 두 번 겪기 어려운 이야기보다 내가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은 ‘무(無)교’라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는다. ‘종교가 없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며 계속 물으며 이해는커녕 무교의 삶이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못하는 그들이었다. 그만큼 종교가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삶 속에 녹아있는 문화이자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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