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함께 했던 가족 같은 동네 친구들. (사진=이다영)

[뉴스인] 이다영 = 꿀 같은 주말에 약속이 없어 집에만 콕 박혀 하루 종일 TV 채널을 돌리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못 견디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누구라도 불러내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괜히 평소에 안 읽는 책을 뒤적거리거나 하다못해 공원 산책이나 드라이브라도 가게 되는 심정을 공감할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부르키나파소에서 일상을 보낸다면 더욱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곳에서도 주말은 주말이다. 금요일 밤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새벽까지 춤추기 바쁘고 토요일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집안일을 하거나 나름대로의 여가를 보낸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볼거리가 많지 않기에 남는 시간엔 기껏해야 친구네 집에 찾아가 둘러앉아 한담하다가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다.

부르키나파소에 거주할 때 토요일 오전엔 한글학교에서 한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아와 밀린 빨래와 집안일을 하며 저녁을 맞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토요일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데'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온다. 그럴 땐 얼른 끼니를 때우고 친구네 집으로 찾아간다. 친구들과 함께 보낸 나의 여가 생활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둘러앉아 축구를 보고 있는 마을사람들. (사진=이다영)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여가는 유럽축구 관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미어리그 같은 유럽축구를 좋아해서 새벽에도 축구 생중계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르키나파소 사람들도 축구에 대한 관심은 세계 순위에 들 것이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축구를 시청하기 좋았던 한 가지는 유럽과 시간대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TV가 있는 친구 집에 찾아가면 어김없이 프리미어리그나 라 리가, 때로는 챔피언스 리그까지 시청이 가능하다. 유명 구단이 맞붙는 빅 매치가 있는 날이면 거리도 꽤 한산하다. 집집마다 TV를 틀어놓고 TV가 없는 동네 주민까지 모여들어 골을 넣을 때마다 함성소리가 들릴 때면 '우리나라도 어르신네들 어렸을 적엔 그랬으려니' 생각하게 된다.

특히 부르키나파소 경기가 있는 날에는 주민들이 이런 복장을 한다. (사진=황옥문)

축구마저 시즌이 끝날 때면 친구들과 집 앞에서 값싼 홍차에 설탕을 가득 부어 아주 쓰게 우려낸 사헬식 티를 즐긴다. 그들은 그것을 즐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있기 위해 홀짝거릴 뿐 입안은 쓴 맛으로 얼얼하다.

홍차를 즐기다가 신이 나면 친구들은 젬베(서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를 들고 나와 그들만의 박자와 가락으로 노래를 부른다. 춤을 잘 추는 친구들은 몸을 흔들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페트병을 주워서 박자를 맞추는 친구도 있다.

전통악기 젬베와 플라스틱 통을 두들기며 함께 노래하는 모습 (사진=이다영)

그렇게 특별한 공연이 있지 않은 날엔 가끔씩 오토바이를 배웠다. 해외 파견자 신분으로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주행하는 것은 사고 가능성이 있어 금지돼 있었으므로 직접 혼자 타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자전거, 오토바이 등 이동수단에 자꾸 눈독들인 것은 그저 바람을 쐬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르키나파소의 오토바이는 저렴한 중국산 수동 오토바이가 많아 기어를 계속 조정해줘야 했다. 처음 배우는 오토바이인데 오토가 아닌 수동으로, 그것도 나 같은 겁쟁이가 배우려니 여간 어렵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탔던 오토바이와 Wi-Fi를 잡으려 애쓰던 집 앞 호텔. (사진=이다영)

그래도 오토바이를 배운다는 핑계로 모래먼지를 뒤집어쓰고 친구와 함께 동네 한 바퀴, 시내 한 바퀴 돌고나면 시원한 밤공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코스는 우리 집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에 나무가 울창한 공원을 지날 때였다. 시원한 바람이 갑자기 쌀쌀한 바람으로 바뀌는 짧은 200~300m 거리였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신명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날은 바깥에 둘러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상하고, 땅콩을 까먹고, 안 잡히는 길 건너편 호텔 와이파이에 접속하려 용을 쓰다가 하루가 끝이 난다. 밤이 깊어질 때면 먼지로 뒤덮인 와가두구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별자리를 이어보다가 오늘 하루도 꽤나 심심했지만 친구들과 함께여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집 앞 도로를 지나는 오토바이, 사람, 모래먼지. (사진=이다영)

이렇게 모기의 위협을 감수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던 이유는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동영상을 보기는커녕 웹서핑조차 힘들었던 이유가 크다. 인터넷에 의존해 삶이 굴러가는 한국과 달리 부르키나파소에서는 기껏해야 페이스북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할 뿐, 오프라인에서 대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심심한 어느 주말 오후, 그 땐 그랬지 하는 마음으로 TV를 잠시 끄고, 핸드폰을 잠깐 닫고 어디를 나가볼까, 친구를 만나볼까 고민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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