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4년 5월 구지 오로모(Guji Oromo)족이 미이 복쿠(Me’ee Bokkoo)에서 리더 의식 행렬을 하고 있다. 지금은 이런 원시 부족 모습을 찾기 쉽지 않다. (사진 출처=Gadaa.com)

[뉴스인] 김주원 = “와, 오랜만이에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내 인생 최초의 에티오피아인이 건넨 인사다.

사실 아프리카 출신 사람을 처음 만나본 것은 아니다. 교환학생 시절, 국제관계학을 공부 중이던 아주 평범한 나에게 컴퓨터가 자꾸 고장 난다며 한번 봐줄 수 있겠냐는 케냐인 친구가 있었으니까.

그녀의 눈에는 내가 흔하디흔한 수학과 컴퓨터에 능한 아시아인처럼 보였나 보다. 그녀의 그 질문은 아프리카와 한국 사이의 24시간이 넘는 비행시간만큼이나 먼 우리의 인식 차이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케냐인 친구를 만났던 2014년에서 2년이 흐른 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베텔씨였다. 당연히 영어로 대화를 나눌 줄 알았는데, 웬걸. 능숙한 한국어로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 연예인 그 누구보다 자연스러운 발음과 수준 높은 어휘로 대화를 이끄는 게 아닌가. 나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 전리품으로 남성성 증명하는 부족민 문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에티오피아의 부족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텔 씨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24시간 경비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 근처의 원주민 부족이 본인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남자의 성기를 가져와 여자에게 바쳐야 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전리품을 얻어내는 데는 전투로 단련된 부족민들보다 도시 속에서 매일 공부나 하는 대학생들이 비교적 쉬운 상대였기에 경비가 없는 대학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했다.

학교 몰래 담장을 넘어 그 부족을 찾아간 베텔 씨와 친구들에게 부족민들은 음식을 대접했다고 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화도 한마디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고 했다. 도시에서만 사느라 그렇게 진짜 원시시대처럼 사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봐서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나는 부족민들의 특이하다면 특이한 문화보다도 그 문화를 그리는 베텔 씨의 표현에서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인’의 입에서 부족민들의 문화가 신기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지난 2014년 5월 구지 오로모(Guji Oromo)족이 미이 복쿠(Me’ee Bokkoo)에서 리더 의식 행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Gadaa.com)

◇ 보통 사람의 편견을 깨는 것은 결국 보통의 경험

나는 베텔 씨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들을 상상했을까? 영문이 크게 쓰인 빛바랜 티셔츠를 입고, 아프리카 영어를 구사하는 키 큰 남자를 상상하지 않았나. 아프리카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이 보여주듯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않았나.

그러다 문득 베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교환학생 시절 나를 나 자체가 아니라 아시아인으로 규정하는 ‘타자화’의 시각에 힘들었으면서, 그새 힘들었던 기억일랑 잊고 아프리카를 내 시선과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내가 아니라 아시아인으로 규정하는 시각이 불쾌했으면서도 왜 나는 그동안 아프리카를 한데 묶어 보고 있었을까. 무지 때문이라는 변명만큼 창피한 것은 없었기에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베텔 씨를 만난 아주 보통의 경험은 내가 얼마나 편견에 갇혀 세상을 내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나는 올 여름 부르키나 파소 출장을 앞두고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할 수많은 아프리카 이야기들이 내 안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지 모르는 많은 편견들을 깨부수는 또 다른 보통의 경험들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나라는 보통 사람을 만나 자기 안에 내재된 보통의 기준들을 바꾸는 경험들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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