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코피노'. (사진=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제공)

[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오페라마는 오페라가 상징하는 고전과 드라마가 대표하는 현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오페라나 뮤지컬 등의 공연 형식이 관객과 일정 수준 이상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작품이 담아낸 시대 및 사회와 관객들이 살아가는 환경 사이의 근본적인 괴리감에 있다.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오페라마의 각본은 피부에 와 닿는 사회적인 현실이나 문제들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고전 음악과 전통적인 극 구성 양식을 바탕으로 제작된다.

대학의 일방적인 학과 폐지를 주제로 삼은 오페라마 작품인 ‘후마니타스(Humanitas)’는 ‘인간다움’을 의미한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축소 및 폐지 통보를 받은 학생들이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외압에 대응하면서 겪는 분노,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고뇌, 인간답게 살고자 발버둥치는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었다. 보다 사실적으로 극을 구성하기 위해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해당 대학 학과의 대표를 초빙하여 자문을 얻기도 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학생들의 인권을 마구 짓밟은 주체들이 우리가 본격적으로 공연 홍보를 시작하는 과정에서도 외압을 행사하려 들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공연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도록 총 기획자였던 내게까지 전화를 걸어 와 겁박을 일삼았을 정도니 그에 맞선 학생들의 좌절감과 무력감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결국 공연은 무사히,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오페라마가 ‘현실’을 고스란히 품음으로써 단순한 예술작품으로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거대한 ‘힘’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했다. ‘이 길은 옳다’고.

다음 작품인 ‘코피노(Kopino)’에서는 필리핀 현지를 넘어 국제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코피노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이를 통해 그간 가려져 있던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에 대해 자성적인 목소리를 내어 비판하고, 또한 그 정체성으로 인해 어디서든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상처받는 코피노의 삶과 고뇌에 대해 조명하였다. 시대와 무책임한 어른들이 낳은 고귀한 존재들이 날 선 시선과 편견에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오페라마 ‘카사노바! 바람둥이 사장님’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근대 초기에 대두되었던 신분제의 모순과 병폐가 자본주의 속에서 조용히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을 비판하고자 비정규직과 노동자라는 현대적 시각에서 바라본 이 세상의 모습과 ‘소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희극적으로 그려내었다.

‘3.87 : 1’이라는 작품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데 성공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스릴러이다. 오늘날 한국의 학력 지상주의가 불러일으키는 폐단에 대해 비판하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한다.

현재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에서 큰 무게중심을 두고 준비 중인 작품이 바로 오페라마 ‘해녀’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제주도의 해녀 문화에 대해 2006년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또한 일본해녀(아마)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최근 제주해녀가 자신들의 원류임을 인정하던 과거와 태도를 달리하여 일본 해녀인 ‘아마’의 독자적인 등재를 꾀하고 있다. 아마가 활동하고 있는 8개 현은 물론 중앙정부까지 발 빠르게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해녀 등재 추진 활동은 현재 다큐멘터리, 인포그래픽 배포, SNS 홍보 등을 통하여 유네스코 등재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알리려 노력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페라마 ‘해녀’가 제작되어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오페라마라는 장르의 홍보나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떠나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더욱 큰 상징성을 띄며, 아울러 우리 것을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으로 연결된다. 

나는 오페라마를 단순히 공연의 한 장르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라도 오페라마가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잊고 또 외면하는 소중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들을 다시금 떠올리고 되돌아볼 수 있는 소통구로서 자리하게 되기를 그 무엇보다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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