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난민'.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제공)

[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흔히들 예술을 두고 표현의 기술이라 말한다.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의에서 ‘예술’이라는 분야가 이 사회에서 어떠한 입지에 놓여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나는 예술이 표현의 기술인 동시에 관점 함양의 장(場)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언급한 관점이란 예술적인 미(美)를 인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심미안(審美眼)으로, 이는 인간이 단순히 생존만을 목표로 하는 동물적인 존재를 초월하였음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이다.
 
심미안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구별하고 향유할 줄 아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려내는 상상력과 희망으로 가득한 무형(無形)의 꿈을 꾸는 힘 역시 바로 심미안으로부터 비롯된다.

요즈음 학생들을 상대로 강단에 설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꿈을 꾸지 않아서가 아니라 꿈을 꾸기에 버거운 세상이라서, 그들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여유를 갖기 어려운 세상이라서. 그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을 이룩한 기성세대의 한 명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한 명의 교육자로서, 이미 사회에 진출해 있는 예술가로서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심했다. 결국 주입식 이론, 실기에 치우친 기존의 교육을 벗어난 새로운 개념의 ‘예술 교육’을 찾아내야 했다.

고전 예술 세계와 현대를 잇는다는 오페라마의 기본 원칙 아래 클래식 토크 콘서트인 ‘정신나간 작곡가와 kiss하다’, 교육 공연인 ‘오페라마 : 인문학 콘서트’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술인에게 가장 필요한 실천적이고 교육적인 정신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것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예술 교과로 진행하는 강의 ‘오페라마’이다.
 
이는 학생 수가 총 80~100명에 가까운 대형 강의로 모두가 함께 오페라마 공연을 제작하여 실제 상업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수업의 커리큘럼이다. 오리엔테이션과 필수 기본 개념 습득을 마친 대학생들은 곧바로 제작/기획 팀, 홍보/마케팅 팀, 배우/앙상블 팀, 연출 팀으로 나뉘어 한 학기 내내 어쩌면 학생으로서 버거울 수도 있는 자신들의 역할에 매진하며 보다 ‘큰 그림’을 함께 만들어나간다. 비록 아직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모임이지만 틀에 박힌 일상이나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일반적인 흐름과는 확연히 다른, ‘열정’이 가득한 시간이다.
 
교재를 들여다보고, 열심히 그 내용을 외우고 정리하여 시험을 치르고, 그렇게 만들어 자아낸 예쁜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보호받는 학생일수록 때로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현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겪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심의 결과물이 바로 ‘오페라마’ 강의였다.

현재 오페라마 강의는 5년에 걸쳐 제5기까지 그 커리큘럼을 비롯한 최종 공연을 마쳤다. 최근의 세 공연은 대학의 일방적 학과 폐지 사건을 다룬 ‘후마니타스(humanitas)’, 필리핀 한인 2세들의 애환을 그린 ‘코피노(Kopino)’, 국제 난민 문제를 바탕으로 구성한 ‘난민(refugee)’이었다. 첨예한 사회적, 인간 가치에 관한 화두를 다룬 작품을 공연으로 만들어내면서 학생들은 치열한 토론을 벌이며 보다 인간적인 의문들과 진지하게 마주하기도 했다.
 
오페라마 수업은 예술이 추구해야 할 관점 함양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며 다음 세대에 심미안을 심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페라마 제 5기 ‘난민’ 작품에 참여한 학생들의 수업 소감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학교에 다니는 4년 중 가장 바쁜 학기였지만, 그만큼 가장 행복한 한 학기였습니다. 충분히 힘들었을 시간이지만 팀원들과 바삐 움직이다 보니 힘들어할 새도 없었습니다. 전공과목 공부마저도 제쳐두고 배우들과 팀원들을 닦달하고 다독이던 추억들, 연습이나 회의가 끝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남았습니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운이 더 좋다면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주겠지요.” - 총연출

  “저희가 만든 것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하나의 세계를 위해, 86명의 학생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부여받은 포지션이 ‘전체’를 구성하는 필수요소라는 것을 인식할 때 무섭도록 열의에 휩싸입니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그 열의를 갖고 학생들 모두는 하나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저희는 아마추어보다 더한 아마추어들입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이기에 프로들이 얻을 수 없었던 가치들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공연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저희는 오페라마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 각본 부서

  “어쩌면 나 자신도 그 앞에 서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간의 부끄러움과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서 나서길 주저했었다. 반면 그 학생들은 부끄럽고 어설프지만 패기롭게 자신의 모습을 어필했다. 그 용기와 열정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앉아서 팀이 정해지기만을 기다리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이어지는 각 팀의 팀장 선출 시간에, 지원자를 찾는 공허한 물음이 계속 이어졌고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손을 들고 지원했다.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후의 일들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학생이란 본분을 벗어나서 그 이상 가는 범주의 일을 하다 보니 솔직히 힘에 부치는 일도 많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다. 가끔씩 하기 힘들고 힘에 부치는 일이 발생할 때는 항상 처음 이 일에 지원하게 된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 제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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