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낮에는 마구간에서 말(馬)을 돌보고, 밤에는 책상 위에서 말(言)을 돌본다. 이원문 씨는 경주마 관리라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창작해온 아마추어 문학인이다.
이제 시를 향한 이 씨의 열정이 작은 결실을 맺게 됐다. 이원문 씨의 시들이 월간 문학광장 6월호 시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게 된 것이다.
5월말에는 이원문 씨의 작품들을 엮은 시집 '백마의 눈물' (책나무출판사, 7000원)이 출간될 예정이다.
월간 문학광장은 매달 시, 소설, 수필 등을 싣는 순수 문학잡지다.
발행인 임정일 씨는 "이원문 씨가 평론가와 문인들로 구성된 심사단의 1차, 2차 심사를 거쳐 최종 당선자로 결정됐다"며 "경마장에서 일하는 분이 등단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 했다.
이원문 시인의 작품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건져낸 진솔한 느낌들이 담겨 있다. 마필관리사라는 직업 때문에 그의 작품들에는 유난히 말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주암리 닭 울었다/내-사랑하는 말들아 어서들 일어나라/주암리 닭 울었다/내 사랑하는 말들아 어서들 가자/저-과천 벌 경주로로'
그의 대표작인 '애마의 질주'는 새벽에 시작되는 마필관리사의 일과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경주마들은 새벽에 일어나 경주로에서 조교를 받는다. 하지만 이른 새벽에 잠을 자고 싶어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다. 일어나기 싫어서 자는 척 하는 경주마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 창작 활동뿐 아니라 말들을 유난히 사랑하는 관리사로 유명하다. 그가 돌보는 말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하다. 그가 말들에게 애정을 듬뿍 쏟기 때문이다.
이 씨는 "우리 마방에 히어로인터뷰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고 기회만 있으면 뽀뽀(?)를 퍼붓는다. 말도 사람하고 똑같다. 내가 말을 좋아하면 말도 날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원문 시인의 애마(愛馬)정신은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관리사 등에 얹고 질주하는 애마들아/마분 치워놓고 이불도 깔아놓고/당근 썰어 넣은 맛있는 밥 지었다/빨리 달려 오너라/너희들을 기다린다' (말 조련사의 노래 中)
그는 16년 동안 제약회사에 다녔던 회사원이었으나 고졸출신의 설움을 못 이겨 그만두고 서른여섯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마필관리사가 된 사람이다.
이씨는 "되돌아보면 참으로 고통스럽고 신산한 삶이었다.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느낌, 가슴 아리는 삶의 회한, 이런 것들이 저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주마의 일생에 인간의 삶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경주마는 고향땅과 어미를 떠나 낯선 경마장에 들어와서 고된 훈련을 받고, 경쟁에서 다른 말을 이기지 못하면 도태되는 운명이다.
이원문 시인은 경주마를 통해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아등바등 발버둥 치며 살아도 종국에는 쓸쓸하게 퇴장하는 우리 삶에 대해 그는 '바람처럼 살아라'는 인생해법을 제시한다.
바람 같은 우리의 삶/높아도 넘어가고/돌아서 가고/낮아도 막히면 피해서 가고/틈새로 빠져나가고/어떻게 하든 가야할 삶/바람같지 않을까요.(바람 삶 구름 마음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