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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 황종환 논설위원 =얼마 전 이른 아침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아파트 담장에 장작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검붉은 불꽃같은 능소화가 활짝 피어났다. 구중궁궐의 애달프고 은밀한 사랑을 담은 그리움을 상징하는 꽃이라서 순간 가슴에 애잔한 슬픔마저 느껴졌다. 올해 들어 여름철에 유난히 장대비 같은 소나기가 자주 쏟아져 내린다. 비가 내리고 난 후 날씨는 가을처럼 시원하고 파란 하늘은 더욱 깊고 청명하다.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려서인지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음에도 예년과 다르게 훨씬 선선한 기분이다. 하늘과 땅과 산과 바다가 하나의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며 이 세상에서 지쳐 힘들어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듯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높고 깊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두리둥실 떠다니고 초록의 나무에는 새들이 날아와서 자리를 잡는다. 한 동안 새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것 같다. 녹음 아래에서 맑은 향기를 마시며 눈을 감은 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들이 생각과 실제의 모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의 순전한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초록의 나뭇잎으로 뒤덮인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행복해지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십여 년 전 쯤 지난 필자가 은퇴한 직장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다. 예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개선되었던 때였다. 당시 집안이 상당히 좋다고 소문난 여자직원 한명이 있었다. 자존심이 유난히 세고 자신이 맡은 일에는 나름 열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주위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직원이 정기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는데 혼자서 개인 물품과 컴퓨터를 옮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남자직원들에게 부탁하여 함께 짐을 옮겨주도록 하였던 적이 있다. 나중에 직원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평소 그 직원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이로움만 챙기고 다른 직원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감정이 상했다고 한다. 그 후 직원들과 대화할 때마다 각자 본연의 특성과 장점을 살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던 것 같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조화와 공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조화는 주변과 공존하며 다른 것들에 유용하며 이로운 위치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강제로 주입할 수 없는 균형 잡힌 이해로서 다른 사람에게 더욱 큰 조화를 가져다준다. 잠자리에서 겁을 먹고 있는 아이를 차분하게 달래주는 자장가와 같다. 또한 공감은 성공적인 나이 듦의 필수 과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타인과 공명시켜 상대의 느낌을 이해하고 상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요즘 같은 자신의 욕구보다 경제적 문제를 우선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인간미 있는 공감이 부족한 상황과 자주 마주칠 때마다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한 때 사랑해마지 않았던 지나간 시절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절이지만 마음만은 아직까지 20세기에 머물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가끔 20세기 팝송과 영화를 듣고 보면서 그 시절의 패션을 떠올리며 장롱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자켓을 꺼내 즐겨 입는다. 때로는 우상이었던 배우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대중들이 외면하였던 작품을 다시 보고 평가하며 열광하기도 한다. 왜 지나간 시간을 여전히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 만큼 지난 20세기는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찾아내어 움직이게 하는 감동적이고 역동적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지만, 서로 다투면서 망치지 않고 모든 것이 공존하였으며 다양함속에 서로 변이와 변주가 이루어져 시시각각 매력적인 것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 꿈을 꾼다.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꿈꾸는 자가 인생을 멋지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이 마음먹은 만큼만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불행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행복에 겨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행복한 사람은 얻는 것을 불행한 사람은 잃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잃은 것을 세는 만큼 행복이 비워지고 얻은 것을 세는 만큼 행복이 채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 이 순간 건강하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요 은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늙어간다는 사실을 대다수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진정으로 자신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을 추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나이 든 사람 중에 자주 깜박깜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젊은이들 못지않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이 약해지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기운이 넘치기도 한다. 인생에는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삶의 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생각보다 넓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 들꽃의 계절이다. 들꽃은 자연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며 서로 공감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돌보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들에 피는 야생화야말로 진정한 꽃이 아닐까 싶다. 헬렌 켈러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것은 마음으로 느껴야만 한다. 모든 문제에는 인내가 최고의 해법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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