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김효헌 = 2020년의 크리스마스는 많이 우울하다.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는 계속되는 봉쇄령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하고 많은 사람의 생명과 삶의 기쁨을 앗아갔다. 백신이 개발되어 영국은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12월 8일에 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런던에서 발견된 코로나변종은 다시 온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런 침울한 상황 속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는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프랑스인 친구가 프랑스로 가기 전에 선물과 카드를 주었다.

사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이 멀리 사는 가족들도 다 모여 함께 보내는 큰 명절이다. 이런 날에 필자의 남편이 한국에 가서 혼자 지낸다는 것을 안 지인들은 크리스마스에 혼자 지내는 것은 결코 안 된다며 서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결국, 필자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게 된 지인은 바로 한 한국인 선교사님 집이다. 이 선교사님은 한국의 어려운 시기였던 박정희 정권 때 독일의 간호사로 떠나신 분이다. 선교사님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서 그분이 살고 계시는 보네스(Bo` ness)라는 곳으로 갔다. 선교사님도 혼자 살고 계시니까 그분의 지인 중 영국인 알란이 자신의 집으로 크리스마스 디너(Christmas Dinner) 에 초대했다며 필자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다.

알란은 중국인 부인을 둔 스코티쉬로 평소 동양인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으며, 혼자 계시는 선교사님을 많이 보살펴 주시는 고마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필자도 거부감 없이 초대에 응했다.

 

크리스마스 디너(Christmas Dinner) 는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하는 시간으로 보통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이루어지는 저녁으로 코스는 스타터, 메인, 디저트 그리고 치즈와 와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란은 오후 3 : 30분에 우리를 초대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알란의 예쁜 딸 아만다가 나를 반기면서 '아줌마'라고 적은 선물을 주었다. 아만다는 10살이며 피아노를 아주 잘 쳐서 8급까진 딴 영재였다. 거실에는 작지만 아름답게 꾸민 식탁이 준비되어있었다. 먼저 칠면조 요리부터 식사가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 요리의 대명사는 칠면조 요리가 아닌가. 퍽퍽한 칠면조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알란과 그 부인의 러브스토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상해에서 사랑을 꽃피웠다며  행복하게 웃는다.

식사가 끝이 나고 디저트가 나왔다. 디저트를 먹으면서 북한 이야기와 한국전쟁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중국인 부인이 한국전쟁을 역사 시간에 배웠는데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계기는 “미국이 한국에 쳐들어 와서 한국을 구해주기 위해 중국이 1.4 후퇴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관계를 통해 알게 되어 놀라웠다.

한편 우리가 아는 ‘건배’라는 말을 중국에서도 똑같이 ‘건배’라고 부르고 사용한다며 같은 동양인들끼리 신기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배는 ‘축복하는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유래된 말이란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지니까 딸 아만다가 심심해하면서 언제 치즈와 크래커를 먹을 거냐며 계속해서 물어본다. 이를 알아차린 알란이 치즈와 크래커를 내왔다.

사실 필자는 치즈와는 아무리 친해지고 싶어도 친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홍어 냄새가 코를 찔러서 못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홍어보다 더 지독한 냄새를 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치즈를 파는 상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모양이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하나 정도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지만 그 맛을 음미하기에 치즈는 내게는 너무 먼 당신이다. 하지만 알란의 성의를 봐서 먼저 제일 잘 아는 체더치즈를 한 점 잘라 크래커 위에 얹어 먹었다. 그러고 나서 프랑스산 카망베르 치즈를 시도해 보았다. 이 치즈는 그래도 익숙한 편이라 한 점 시도해 보았다. 첫맛은 그래도 참을 만했지만, 곧 발 냄새가 올라오는 데 참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 와중에 알란이 다른 치즈 하나를 추천해 줬다. 페니실린 주사를 놓은 치즈라면서 자신도 이 치즈는 자신 없다며 한번 시도해 보라고 권했다. ‘페니실린 주사를 놓은 거라’는 말만 들어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알란의 부인에게 치즈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치즈는 절대 먹지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 보니 몇몇 치즈를 제외하고는 동양인에게 서양의 치즈는 쉽게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플루트 친구들과 연말 와인 파티한 기억이 난다. 그때도 와인이랑 치즈를 영국 친구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필자도 맛을 보았는데 즉시 후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치즈와 크래커를 먹으면서 크래커 포장을 뜯었다. 이 안에는 종이 왕관과 덕담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상대방의 크래커 속에 들어있는 덕담을 서로 읽어주고 퀴즈를 하면서 즐기는 아버지와 딸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한참을 먹고 즐기다가 아만다의 피아노 실력이 궁금해져서 피아노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바로 피아노 실력을 선보이겠다고 피아노 방으로 올라가서 피아노를 치는 데 조지 거슈윈의 곡이다. 이 곡은 열 살짜리 아이가 칠 수 있는 간단한 곡이 아닌 데 정말 대단했다. 아만다는 다른 악기들도 보여 주었다. 그중에 플루트가 있어서 내가 플루트를 불고 아만다는 피아노를 치면서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친구에게 프랑스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냐며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영국에서 코로나변종이 발생해서 영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비행기는 취소가 되어 집에서 쓸쓸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 위로하기 위해 차라도 한잔하고 싶어서 커피숍에 갔는데, 코로나가 더 기성을 부려 모든 카페가 포장 구매만 된다고 해서 서로 커피를 손에 들고 추위에 떨면서 밖에서 담소를 나눠야 했다.

새해에는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혼자 보내는 사람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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