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

[뉴스인]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지금 한국사회는 부동산 가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잖아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민생이 퍽퍽한데도 어인 일인지 아파트 시세는 천정부지다.

여기에 지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우울증도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택배 물량은 20%가 증가했다고 한다. 칩거 생활 속에 갖고 싶은 물건들은 쌓여 가는데도 정서적 결핍감은 더 깊어졌다는 얘기다.

한편 최근에는 물질만능시대에 반해 최소한의 환경으로 생활하려는 미니멀 라이프가 인기를 끌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적 욕구 충족에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들이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방식(decluttering)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생활의 개운함과 희열이 있는 소박한 행복감이다.

그것은 바로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인 가치에 대한 각성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던 더 큰, 더 높은,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던 삶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다. 당연히 물질이 인생살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격심한 경쟁과 맞물려 물질에 예속되어 버리는 세태가 문제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결국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의 공허감을 가져다주게 된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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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본질은 마음의 ‘충만감’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본질은 자신이 정서적·정신적으로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충만감’이다. 물론 물질적인 충족이 한 요소는 될 수 있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되지 않는다. 물질의 향유에 대해 정신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어떤 욕구나 욕망이 채워져야 하는 조건부가 아니다. 조건이라는 전제가 깔리면 만족의 한계가 없게 된다. 인간은 항상 더 높은 욕구를 충족시키려 계속해서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는 속성을 작동시키게 되어 있다.

정신적 충만감이 아닌 물질적 갈망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그 만족도나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말하자면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다. 물질적 기준의 행복감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또 다른 욕망을 잉태하게 된다. 곧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느끼게 되는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아 이내 다시 더 많은 것을 찾게끔 되어 있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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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Being' vs 'Enjoy Having'

그래서 참된 행복감이란 불안감이나 초조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안정을 느끼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심리적 상태다. 한 마디로 정신적으로 누리는 ‘좋은 감정’을 의미한다. 좋은 감정이란 만족, 기쁨, 즐거움, 신남, 재미, 보람, 가치, 평온, 안정, 의욕, 희망 등이다.

'Enjoy Being'. '내가 존재함을 즐기는 것‘, 그것이 근원적인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져야 함'(Enjoy Having)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내가 이 세상에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며 가슴 뿌듯함을 안겨준다.

달리 말하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체험하는 쾌감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믿는 마음자세다. 이 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 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느낌이다.

이러한 좋은 느낌의 판단은 주관적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를 수가 있다. 그런데 행복을 욕구나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의 느낌으로 규정하면 그 행복은 지나가는 ‘잠시의 강렬한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이란 남을 위식해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가하는 절대적인 가치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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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 다섯 가지 욕구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사람의 욕구는 어느 단계를 달성하게 되면 계속 더 높은 단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절대적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행복도를 수치화 또는 정량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아가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크게 두 단계로 나누고 세부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분류 했다. 다섯 가지 요소는 기본욕구로서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와 상위욕구로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다.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기본욕구에서 상위욕구 단계로 올라가면서 개인의 문화적인 수준도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넓게 보면 사회의 선진화 정도도 상향되어 가는 것이다. 개인의 문화적인 수준과 사회의 선진화 정도는 인간의 행복도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기본욕구는 물질적 방향성을 띠지만 상위욕구는 정신적 지향성을 갖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질숭배 풍조는 기본욕구에 대한 집착해서 비롯된다. 반면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바로 상위욕구에 대한 가치의식이 결여돼 있어서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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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으로는 100% 만족이 없어

행복은 인간이 평생을 통해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최고의 가치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말리 생겨나기 전에 동양권 문화에서는 주로 ‘복’(福) 이라는 말이 쓰였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23.7%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매우 행복하다’라는 항목은 겨우 7%였다. 그것은 아마 사람들이 끝없는 욕구나 욕망에 매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냥 물질주의적 가치관에다 출세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그렇다면 물질이 꼭 행복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것에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부의 축적은 더 큰 것을 원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 불안해지는 속성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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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행운’ 사이..'행복의 관점'

행복은 내게 아주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것에 숨겨져 있다.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이 주위에 널려 있는데도 1만 개중의 하나가 나온다는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좇는다. 대부분 가까이 있는 행복을 놓쳐버리면서다.

‘행복’이라는 말은 19세기에 일본의 학자들이 서구의 개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영어의 ‘happiness' 혹은 불어의 ’bonheur' 같은 단어는 어원상 ‘(신이 허락한) 좋은 시간’으로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사고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일본의 번역자들은 물질적 풍요와 관련이 있는 두 글자인 ‘행’(幸)과 ‘복’(福)을 붙여서 단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원래의 서구 개념에서 행복이나 우리의 행복의 의미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행복 개념이 외형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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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참다운 ‘복’(福)의 의미

동양인의 ‘복’의 개념을 한자로 풀이해본다. 곧 ‘복 복'(福)자에서 ‘보일 시'(示)는 하늘(天)이 사람에게 내려서 나타낸다는 상형문자에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이 합친 것이다.

이를 풀이하면 ‘모든 것은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 뿐인 입에 풀칠할 전답이 있으면 족하다’는 아주 소박한 의미일 것이다. 또 달리 어떻게 보면 ‘천··인은 하나’라는 섭리를 표현한 심오한 뜻일 수도 있다.

반면에 서양인들이 복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하루의 행복은 이발소에 가는 것이고, 일주일의 행복은 결혼하는 것이고, 한 달 행복은 말 타는 것이고, 일 년 행복은 새집 짓고 사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한결 같이 행복을 단순히 욕구 충족을 위한 쾌락적 경험 추구가 아니라고 했다. 진정한 행복은 이상적인 목표를 지향하는 삶을 통해 정신이 만족하는 상태로 생각했다.

물론 그들도 물질적인 부나 쾌락적 욕구를 경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최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얻는데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 따르는 부산물"이라 했다.  한마디로 행복의 본질을 설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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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바로 ‘지족지부’(知足知富)

그렇다면 똑딱똑딱 흘러가는 아까운 시간을 놓치는 것은 참다운 행복을 잃는 것이다. 오늘 하루라는 ‘현재‘는 내게 주어진 선물과 같다. 공교롭게도 현재와 감사는 다 같이 영어로 ’present'다. 나중이 아닌 지금 손에 쥐는 행복의 경험은 뇌에 성공 시냅스를 만들어 자신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게 된다.

이제 진정으로 내게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을 누리도록 해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맘껏 행복을 노래한다. 나 자신 말고 행여 다른 어떤 것이 언젠가 나를 행복케 해 줄 것이라 막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지족지부(知足知富) 곧 족한 줄을 알고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부유함이며,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일터에서든 가정에서든 내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이 행복을 거둬들일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극적인 생활의 행운이 아닌 잔잔한 마음의 행복을 씨줄날줄로 촘촘히 엮어내야 한다. 매 순간을 즐기며 음미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감사하면서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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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와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역임과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석세스 패러다임',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등 14권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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