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뉴스인]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기계를 통해 자동으로 번역을 해주는 파파고(Papago)라는 서비스가 있다.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해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10개가 넘는 외국어 번역이 가능하다. 이러한 자동 번역 서비스는 표현의 정교함이 미흡한 점도 있고 오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의 진화로 이러한 결점들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요즘은 ‘말하는 번역기’도 나와 무려 100여개의 언어로 통역과 번역을 함께 지원하는 세상이 됐다.

사진자료=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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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추세로 가면 앞으로는 굳이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어라는 게 문화를 담아내야 하는 감성적 측면이 강해 자동 번역의 한계는 이어질 수도 있다.

현재는 특정 분야의 목적에 맞춘 특화된 형태로 개발되는 ‘약 인공지능’(Weak AI)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같이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 자의식을 지닌 ‘강 인공지능’(Strong AI)이 본격화 되면 번역의 정밀한 완성도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국과 미국에 국한된 정통 영어에만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의 다각화와 융합화가 이뤄지는 판국에 한국식 영어도 도전해 볼 일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속성이 있어 변형된 영어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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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형식보다는 소통의 수단

본래 원어민 영어라 하더라도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여러 면에서 영국영어와 미국영어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어느 원어민 국가의 외국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어를 이해하기가 쉬운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공통의 영어를 쓰는 사람과 런던 토박이들의 영어는 억양, 문법, 어휘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편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의 영어, 즉 흑인영어와 이른바 주류영어(mainstream English)와는 엄연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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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정통 영어니 정석 영어니를 구분 짓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할 수 있다. 언어학자 톰 맥아더는 “정통 원어민 영어를 지역 기준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특정 지역의 원어민 영어를 가지고 완전한 영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는데 있어 정석을 까다롭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발음에 있어서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다. 표준이 아닌 영어 사투리라도 의사소통이 되면 될 일이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사용되는 영어의 차이는 문어체보다도 구어체에서 더 확연히 나타난다. 그것도 영어의 발음에서다. 즉 문법이나 단어는 덜하나 억양만큼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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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사투리 하는 외국인 ‘더 정겨워’

10여 년 전, KBS에서 ‘미녀들의 수다’라는 글로벌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출연해 그들의 경험과 문화체험, 그리고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토크쇼였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각국의 여성들은 한국 사람을 뺨칠 정도로 우리말을 구사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의 모국어 방식대로 한국어를 써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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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공부를 한 외국 학생들은 그 지역 특유의 말투가 담긴 지역 사투리를 멋들어지게 구사했다. 당연히 우리는 “어쩌면 저렇게 사투리로 한국말을 잘하냐!”라고 감탄을 했다.

외국어의 경우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도 정석이 아닌 언어를 쓰게 되더라도 의사소통이 이뤄지면 오히려 더 친화감을 높일 수 있다. 그게 외국어의 장점이다. 언어를 이성적으로 다루는 것보다 감성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즉 언어를 지식으로가 아닌 문화로 대하는 것이다.

영어도 같은 이치다. 영어를 쓰는 원어민 국가나 지역에 따라 말투는 달라지게 돼있다. 현지에 유학이나 연수를 가서 영어를 배운다면 특정 국가나 지역의 악센트를 익히게 된다. 그러나 교재나 책을 통해 영어를 배울 때는 대부분 표준영어의 말투를 접하게 된다. 어떤 영어 환경에 노출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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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리시→‘글로비시’로 진화하는 시대

만약 필리핀이나 인도에서 영어를 배운다면 각각 그들 나라 특유의 말투로 영어를 익힐 것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대에 그 영어를 표준어니 아니니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은 잉글리시가 아니라 '글로비시'(Globish)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비시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비원어민들이 쓰는 영어의 다양한 억양을 인정하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 국제사회문화체계나 영어에 대한 규범이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영어권 사람들도 표준어 개념에 대해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도 각자 자신들이 쓰는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서로가 “원조격”임을 주장한다. 영국에서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도 지리적 위치와 사회적 계층에 따라 발화(發話)가 다르며 미국도 인종적, 지역적으로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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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어는 사용하는 국가가 다양하고 인구가 많아 특정 조건으로 ‘표준어’를 정하는 것은 한계성이 있다. 그래서 이전에 정통이 아니라서 이상하게 여겨지던 영어 발음들이 떳떳한 글로비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이른바 정통 영어에 반해 수많은 영어 사투리들이 등장함에 따라 영어의 음성학 개념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지역 영어들이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영어 원어국가에서도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쓰는 영어 문물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전에 한국의 강남 일부에서 자녀들이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하도록 하겠다며 수술을 해서 혀의 구조를 바꾸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그 내용이 미국 언론에도 보도되었는데 기사를 본 원어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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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국가..자기의 영어를 만들어

‘콩글리시’(Konglish)는 ‘코리안 잉글리시’(Korean English)를 말한다. 우리는 콩글리시를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닌 것을 비아냥거려 일컬을 때 이 표현을 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국가들이 각기 자기 방식대로 영어를 활용하고 있다. 영어를 쓰는 주체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미권이 아닌 비원어민들이 쓰는 영어를 우열로 가리지는 않는다. 그들은 외국인이 구사하는 어설픈 영어가 틀렸다는 관점보다는 “그저 외국인이 영어를 하려고 애 쓴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이해를 하려는 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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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양한 변종영어들이 존재한다. ‘재플리시’(Japlish), 이것은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영어(Japanese English)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싱글리시‘(Singlish)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쓰는 영어(Singaporean English)다. 이 외에도 칭글리시, 망글리시 , 태글리시 등 글로비시의 구성원으로 여러 각 국가들에서 자신들 언어에 영어를 차용해 통용되는 영어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싱가포르에서 쓰이는 영어는 격식을 갖추지 않은 의사소통 위주의 비표준 영어 사투리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좀 제대로 된 영어를 쓰자고 ‘좋은 영어 쓰기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옳은 영어이든 아니든 재플리시나 싱글리시는 글로비시 영어 일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 물론 재플리시는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통용되지 않아 공식 글로비시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그 존재는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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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영어라도 자긍심을 가져야

그렇지만 콩글리시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가 쓰는 콩글리시의 대부분이 재플리시를 차용해 와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식 영어는 일본식 영어를 많이 따르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의젓하게 한국식 영어를 쓰면 어떤가. 영어시험이 아닌 이상 일단 서로 의사만 통하면 되지 않을까. 서로 말이 통하려면 언어 자체에다 비언어적 요소도 큰 역할을 한다.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영어를 좀 덧붙힌다해서 그게 한글 경시나 정체성 훼손이나 사대주의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영어는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곧 '링구아 프랑카'(Lingua Granca)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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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한국이 원어민인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하는 영어를 콩글리시로 비하하기에 앞서 우리식 영어도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한국식 영어도 글로비시 영어의 일원이라는 주도적 자세를 가져보도록 하자. 그래야 언젠가는 콩글리시도 떳떳하게 세계 영어권의 반열에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영어교육도 원어민 영어에만 집착할게 아니라 전 지구적 사회의 외국인들이 두루 사용하는 글로벌 영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젠가는 이 글로벌 영어에 한국식 영어가 포함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때를 대비해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우리의 문화 정서가 담긴 한국식 영어를 지탱할 필요도 있다. 그래서 한 영문학자는 콩글리시와 구별하여 이러한 영어를 ‘코리아 잉글리시’(Korea English)로 지칭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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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영어 배우기가 취미‘라는 문화커뮤니케이터이자 칼럼니스트다. 본격 글로벌 시대 이전 영어를 독파해 ’코리아타임스‘를 포함 다양한 영어매체에 영어 칼럼을 기고했으며, 5대양 6대주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 및 언론 분야 교류 경험도 했다.

이 대표는 주요 언론사를 거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와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등 14권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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