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기수들의 모습.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박생규기자 skpq@newsin.co.kr
【서울=뉴시스헬스】박생규 기자 = 우리나라의 경마는 일본인 마주들에 의해 시작됐으며 초창기 경마의 기수들 역시 대부분 일본인들이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도 한인기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기수로 기록돼 있는 사람은 김용백이다.

김용백 기수는 원래 목장에서 일하던 마부였는데 1921년 5월7~8일 양일간에 용산연병장에서 개최된 조선경마대회에 출전하여 한국인 최초의 기수가 됐다.

조선경마대회는 조선경마구락부의 모체인 경성승마구락부에서 개최한 최초의 공식경마대회로 기수는 대부분 일본의 지방경마장에서 초청한 일본인기수들이었다.

하지만 초청기수만으로는 숫자 부족해 목장 마부들 중에서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들을 선발해 후보기수로 기승시켰는데, 김용백 기수가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김용백 기수가 어느 목장 소속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이 후에 다른 대회에 출전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김용백에 이어 등장한 한국인 기수는 1921년 9월23~25일 여의도경마에 출전한 김자근봉(金者斤奉, 나중에 김승배로 개명)과 이복남으로 이들은 둘 다 여의도 황정목장의 마부였다.

특히 김자근봉 기수는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카야마 경마구락부에서 정식 기수 면허를 취득하여 활동했는데, 제2회 천황배 대상경주에서 하세파크라는 경주마를 타고 우승하여 한민족의 기개를 드높였다.

하세파크는 생애통산 37전 8승의 평범한 성적임에도 천황배 경주를 제패한 경주마로 일본 경마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김자근봉 기수가 하세파크의 조교사도 겸했다고 돼 있다.

뚝섬경마장에서 이름을 날렸던 김승길 조교사(작고)는 김자근봉(김승배) 기수의 아들이고 현재 서울경마공원에서 활약중인 김학수 조교사(44조)는 그의 손자다.

한편 이복남 기수는 여의도 경마대회 이후에도 꾸준히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해방 전에 은퇴했다.

1930년대에 활동했던 한국인 기수로는 채일묵과 정태생을 들 수 있다.

채일묵 기수는 1932년 일본 야마구치 경마장에서 기수생활을 시작해 1938까지 일본 경마계에서 활약했으나 기수 은퇴 후에 귀국하여 1942년 조선마사회 직원으로 입사했다.

마사회 입사 후에는 재결, 마사, 경마, 업무, 마사공원, 목장 등 각 부서를 두루 거치며 간부직, 이사직, 고문직까지 역임하며 경마에 한 평생을 바쳤다. 채일묵씨는 73년 타계하였으며 현재 서울경마공원에는 그의 공을 기리는 흉상이 있다.

정태생은 1930년대 일본 한신경마구락부에서 면허를 취득한 후 일본과 중국경마장을 전전하다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귀국하여 신설동 경마장에서 해방 전후에 기수로서 활동했다.

해방 당시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는 약 20여명의 한국인 기수들이 있었는데, 서울 출신 최일선과 정주섭, 북조경마장 출신의 김정식과 김완기, 일본경마장 출신의 김자근봉(김승배)과 정태생, 만주경마장 출신의 최인철, 한승길, 권인덕, 박원봉 등이 활동했다.

<자료=한국마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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