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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헌의 스코틀랜드이야기] 영국의 국군의날(리멤버런스데이)
김효헌 | 승인 2019.11.14 13:15

 


[뉴스인] 김효헌  = 11월이 되면 스코틀랜드 전역에는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기념하는 전쟁과 관련된 양귀비꽃 모양의 포피를 볼 수 있다. 11월 11일은 영국의 전쟁기념일인 리멤버런스데이 이기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제국의 왕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로 시작이 되었다. 이 사건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1918년 11월 11일 4년간의 전쟁이 종식되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기록에 의하면 900,000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자들의 희생을 기리기을 위해 1919년 휴전 일자에 맞춰 11월 11일 오전 11에 2분간 침묵하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는 모든 전쟁 용사들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이 되었다. 11월이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참전용사를 기념하는 양귀비꽃 모양의 장식을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참전용사들을 위한 기부문화로 이 상품들의 판매금액은 모두 참전용사들을 위해 사용되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국민들은 참전 용사들과 희생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양귀비 모양의 다양한 상품들을 구매하고 또 달게 된다. 어떤 사람은 차 앞에도 달고, 어떤 사람은 귀걸이도 하고, 가방에도 하고 정말 다양하다. 

 

필자도 에딘버러에 있는 스콧 기념 탑 밑에 자리한 포피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마다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있다. 필자도 양귀비꽃을 하나 사서 가슴에 달고 나니 참전용사를 위한 행사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었다. 양귀비를 팔고 있는 사람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첨전 용사자로 거동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 젊은 학생들, 에딘버러 대학교 학사 예비 장교 학생들, 스카우트 학생들 모두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밝은 표정들이다. 

 

그 중에 중년의 아주머니가 팔고 있기에 몇마디 대화를 해 봤다. 왜 이 봉사를 하는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알고싶어서 였다. 자신을 '바네사'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할아버지께서 1차 대전에 참전하셔서 전사 하셨다고 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이 봉사를 하고 있고, 봉사를 한 지는 6년이 넘었다고 했다. 참전용사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를 함으로서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어 늘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고 했다. 

 

 

기념행사를 하는 날인 일요일이 되었다. 필자도 행사를 보기 위해 로얄마일로 향했다. 영국은 대부분의 기념일을 그 날짜에 하는 것보다 그날이 있는 일요일에 하는 것이 많다. 올해(2019)는 11월 11일 이 월요일이라 기념행사는 일요일인 10일에 했다. 10시 30분에 에딘버러 성에서 시청사까지 기념 행진이 있고, 11시에 한 번의 포성이 울리고 이때 2분간의 묵념이 있었다. 이후 침묵을 깨우는 또 한 번의 포성이 울리고 묵념이 끝이 났다. 

 

침묵이 끝난 후에 스코틀랜드 총리가 제일 먼저 헌화사를 하고 헌화를 한 후 그 뒤를 이어 주요 인사들이 헌화하고 식이 끝이 났다. 필자도 행사에 참석하여 묵념하면서 참전용사들을 떠올리며 감사를 드렸다. 동시에 고국의 참전용사들을 위한 묵념도 함께 했다. 행사가 끝이 나자 주위의 사람들은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기저기가 분주해 보였다. 대부분의 예비역 군인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든 자신들의 군 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이 행사장을 찾았다.


가슴에 훈장을 달고 이곳에 와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부대며 자신들의 활약상이라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훈장을 달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 친구가 되는 것을 보고 참 의미 있는 날이라는 느껴졌다. 그냥 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누구라도 참여해서 한마음이 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 참여자 중에 아시아계통의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참전용사 행사에 참여한 것을 보고 의문이 일었다. 아시아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왜 여기에 있는 지 궁금했다. 그들은 네팔인으로 구르카라고 부르며 영국의 용병 부대라고 했다.


스위스 용병은 들어 봤어도 구르카 용병은 생소했다. 알고보니 구르카 용병은 세계 3대 용병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용병이었다. 용병이라고 하면 우선 신체적으로 키도 크고 날렵한 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한켠에, 하지만 이들은 이 제 다 나이가 있으니까 몸도 살이 붙고 예전 같지는 않을 거야 하면서도 의문스러웠다. 

 

현지 스코티쉬에게 구르카 용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인정하는 용병이며 처음으로 용병이 된 것은 1814년 네팔과의 전쟁 때 구르카 병사들의 용맹을 보고 이들을 용병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1차대전 때 공을 세웠고, 2차대전 때는 더 많은 활약을 했으며, 한국전 당시 영국군으로 참전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명성을 이어 포클랜드 전쟁당시 구루카 용병이 참여한다는 말만 듣고도 아르헨티나 병사들이 항복하거나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구르카 용병이 영국에서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인도,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용맹을 떨치고 있는 인정하는 용병이라고 했다.  지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6, 12)에 구르카 용병이 담당했다고 했다. 


오늘 행사를 보러 와서 구르카 용병을 알게 된 것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곳 사람들은 필자에게 남한인지 북한지지를 농담처럼 물어 볼 때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불안정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내 나라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불안전한 건 사실이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늘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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