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김천대학교 전승호 교수 =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후 모일간지에 실린 사설을 읽었다.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 제23회 BIFF’ 그 내용인 즉은 개막식의 안정적인 운영, 화려한 레드 카펫 행사, 특별 프로그램의 다양화, 우수한 신인 배우들 발굴......‘

과연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 행사였을까?

필자는 과히 후한 평가는 아니더라도 평균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이유는 특정 영화인들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즉 외화내빈 (外華內貧)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참여와 영화분야 뿐만 아니라 ‘미투’라는 사회적 이슈들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섹션들이 그것이었다.

원래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발상지인 부산을 영상문화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시대에 걸맞은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발전시키고자 기획된 영화제다.

1996년 제1회를 시작으로 2018년 제23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약관의 나이에 걸맞게 아시아 영화인의 연대와 유럽을 잇는 세계적인 영화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인 ‘뷰티풀 데이즈’는 단편과 다큐멘터리로 두각을 나타낸 부산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윤재호의 작품이다. 탈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탈북여성의 생존을 위한 고통 !! 그 시선을 10월 가을 밤의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관객들은 오롯이 받아들여만 했다. 과연 그녀에겐 ‘뷰티풀 데이즈’가 있었을까? 그 역설적 표현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고, 절재된 대사, 주연 여배우의 시선연기, 된장국 테이스티 영상은 이 영화의 백미였다고 감히 필자는 평(評)해 본다.

이에 비해 폐막작인 원화평 감독의 '엽문 외전’은 대중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듯하다. 정통 홍콩 액션에 헐리웃 영화의 화려한 케스팅이 돋보인 전형적인 장르영화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제 무술장면은 홍콩리얼리티의 또 다른 장르라며 집행위원회 측에서는 선정이유를 설명했지만, 그 의도와 달리 너무나도 지엽적(枝葉的)이고 허술한 서술구조는 단순한 보여주기(spectacle)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원화평 감독과 동시대에 홍콩영화를 견인했던 관금붕 감독의 ‘초연’이 폐막작으로 상영되었으면 어땠을까? 라고 상상해 해 본다. 이번 영화제 Gala Presentation(축제+발표: 거장들의 신작과 특별히 주목하는 작품들을 모아 소개) 부문에 참여한 관금붕 감독의 '초연'은 여배우들의 얼굴이 영화의 미술(Miseen-scene)이 되고 리더미컬한 대사는 마치 배경음악처럼 들리게 하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완숙한 거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원화평과 관금붕은 결이 다른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기에 ‘어느 것이 호(好)이고 불호(不好)이다’ 라고 단정짓자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막작과 폐막작 만큼은 서사구조 상의 라임(rhyme)은 맞춰야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외에도 Gala Presentation 부문에 소개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카도토 신야 감독의 '킬링',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국가 중 하나인 필리핀의 영화 100주년 특별전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필리핀은 다양하고 혁신적인 영화와 작가들의 등장으로 아시아와 세계영화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새로운 작가와 영화의 등장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주는 국가다. 이번 특별전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스페인에 대항한 혁명과 미국과의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를 다양한 스토리와 인물들을 통해 영화적 담론으로 영상화하고 있었다. 이번 영화제 기간에 총 10편이 상영되었는데, 그 중 ‘필리핀 국민예술가’라는 칭호를 얻은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작품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1940년대 미국의 식민지 지배시기를 배경으로 한 필리핀 상류층 화가의 모습을 담은 고전작품이다. 현대적인 서양 가치의 유입에 흔들리는 필리핀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특징, 그리고 가족들간의 갈등을 통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전통간의 충돌과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이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 구조가 필자의 눈엔 구한말 혼란스러웠던 우리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왜 일까?

작품 수 면에서는 324편으로 작년보다 20편 정도 늘어난 숫자지만 전체적으로 내용면에선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보다는 기존 감독들의 형식을 답습한 작품이 많았던 것 같다. 영화제의 지속적 발전과 타 영화제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w Currents(아시아 신인감독들의 경쟁부문)섹션에 출품한 10편의 영화는 호기심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다.

그 중 우리나라 영화 ‘벌새’ ‘선희와 슬기’ 이 두 편의 영화는 여성감독이라는 공통점과 청소년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전승호 교수

 ‘벌새’라는 영화는 열네 살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배경은 성수대교 붕괴라는 큰 참사가 일어났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잘못된 사랑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벌새’는 꿀을 찾아 먼 거리를 찾아다니는 작은 새를 일컫는데, 주인공 또한 ‘벌새’와 마찬가지로 꿀만(정체성이 결여된 사랑)을 찾아 헤메다닌다. 이 영화는 폭력적이고 냉정한 세상을 소녀의 눈으로 바라 본 작품이다.

 가족의 무관심이란 이야기의 단초(端初)는 ‘벌새’와 ‘선희와 슬기’는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Icon(주인공 주변에서 그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요소)은 많이 다르다. ‘선희와 슬기’는 또래 친구들과 갈등, 따돌림, 자살, 거짓말이라는 기존영화의 극단적 시퀀스들을 차용하고 있다. 암튼 이 두 편의 영화는 필자의 젊은 초상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올해 신설된 ‘부산 클랙식’이란 섹션을 리뷰해 보고자 한다.

영화사에 기록될 거장들의 주옥같은 걸작의 복원, 미처 소개되지 못한 고전 문제작을 선정하여 영화예술의 지평을 넓힌 영화인들에게 경의의 표하는 부문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1992년 제작되었고 국내에는 1993년 개봉되었던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라는 경극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참고로 당시 필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장국영의 팬이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고 전통문화와 경극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문화대혁명을 직접 눈으로 체험한 감독은 아름다운 경극의 무대 위에 폭력이라는 역설(irony)을 올려 놓았다.

자신들의 눈으로 자신들이 역사를 타자의 입장에서 적나라하게 바라본 열정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즉, 불굴의 영화 정신이 투영된 중국영화의 ‘영원한 클래식’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유일한 중국 본토 영화라는 점이다.

또 하나 주목할 작품이 있었다. 영화의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시민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의 미완의 작품 ‘바람의 저편’이다. 1970년대 제작하다 자금 부족으로 결국 완성되지 못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2017년 3월까지 파리의 한 금고에 방치된 원본 필름을 40년 만에 영화 제작자 프랭크 마샬과 필립 얀 리사에 의해 올해 빛을 보게 되었다. 주제는 전통적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과 당시 영화판을 흔들었던 ’뉴 할리우드‘ 대한 풍자영화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 곳곳 영화들이 많이 참여했고(물론 아시아 영화인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관객들의 호응도 또한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지 지난 3년 전에 비해 훨씬 활기찼다. 정상화 원년을 선포하며 재도약을 약속해서 그런지 발길을 끊었던 영화인들도 속속 부산을 찾았다. 19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축제에 참여하는 등 영화제는 정상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2014년 ‘다이빙벨’ 사태 이후 정치적으로 휘말린 부산국제영화제를 영화인들은 거부하며 보이콧해 왔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의 정상화 선언과 영화계 대부분의 단체가 보이콧을 철회했다. 실제로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지난 2년간 시행하지 않았던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재개했고, CJ ENM, 롯데, 쇼박스, NEW 등 대형 배급사를 비롯해 많은 영화사도 중단했던 자체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영화·영상 관련 비즈니스 자리인 아시아필름마켓도 부산영화제 행사 중에 열렸다.

영화제가 올해 처음 선보인 ‘커뮤니티 BIFF’는 성공적인 행사였다. 남포동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서부산권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아마도 동부산권 위주의 국제행사에 목말라했다는 것의 반증인 것 같다.  ‘커뮤니티 BIFF’는 남녀노소, 가족단위의 관객들에게 풍부한 체험 기회를 제공했으며, 관객들과 소통하겠다는 영화제의 의지를 보여줬다. 이 외에도 각종 전시와 VR 체험 등의 볼거리가 많이 늘어난 영화축제였다.

이번 영화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661명 자원봉사자에 대한 헌정 영상이었다. 이들의 이름이 담긴 엔딩 크레딧이 필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또래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의 심정이어서 더욱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그들의 숨은 고생을 알기에 .....). 부산영화제 로고 티셔츠를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젊은이들 모습은 청춘의 기관차와 같았다. 관광객들을 맞고 안내하며 영화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전국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이는 인기 있는 행사로도 유명해 경쟁률도 치열하다. 자원봉사자로 뽑힌 젊은이들을 보면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뿌듯한 표정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행사가 완벽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었다. 그건 바로 원로 영화인과 부산시에 배정된 개.폐막식의 VIP석이다. 특히, 개막식때 부산시청에 배정된 VIP석의 빈 자리였다. 아마도 북한 방문으로 인해 개막식에 출참한 시장의 부재가 그에 속한 공무원들의 불참을 유도했으리라 사료된다(소상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만약 개막식 초대권이나 티켓을 구하지 못해 즐기지 못한 시민들이나 젊은 영화인들이 이런 빈 자리를 직접 봤다면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럼 부산시청에 배정된 VIP석의 불참을 미리 알았을 집행위원회측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부산시민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라고 명명하면서도 특수 집단만의 공유물로 여겼던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중성이 다시금 떠오르는건 왜 일까? (아마 VIP석에 앉지 못해 일반석에서 개막식을 지켜본 필자의 열등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폐막식에선 부산시청에 배정된 자리는 만석이었다. 물론 이 날은 부산시장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인 입장(부산국제영화제에 한번도 관여된 적도 없고 관여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일반 시민)에서 바라 본 집행위 모습에 대한 견해를 몇 자 적어 본다. 오거돈 신임 부산시장이 천억원의 자금을 조성하여 BIFF에 투자하겠다는 발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에 반해 다른 예술단체들은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에 이용관 이사장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천억원의 자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기금이 조성된다면 오백억은 영화인들을 위해 나머지 오백억은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쓰겠다고 한다. (부산MBC 시사포커스/20180930 방송분)

뭐 이런 앞 뒤가 안 맞는 얘기가 있는가? 기금과는 관계가 없다면서 천억원을 50:50으로 나누어 쓰자고? 지나가는 예쁜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뿐만 아니라 집행위는 부산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하고 협업하겠다고 언론에 대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치않다는 것이 문제다(차라리 약속이나 하지 말지 ㅎ). 물론 부산국제영화제를 23년간 이끌어 온 그들만의 우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라는거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비교해 가며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적다고 하소연하지 말고 말이다.(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이 적다고? 그럼 다른 예술 단체들은 벌써다 굶어 죽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네스코에 지정된 ‘영화창의도시’에 걸맞는 품위를 지키며 앞으로 더욱 더 건승하길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간절히 소망해 본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