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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달나라의 토끼
고선윤 논설위원 | 승인 2017.11.08 16:33
(자료사진=픽사베이)

[뉴스인] 고선윤 논설위원 = 1년 만에 만난 요코의 딸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아줌마, 우사기-짱이 달나라에 갔어요”라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애지중지 하던 애완토끼가 죽었다는 말이다. 벌써 한 달 전 일인데 사람만 보면 이렇게 말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양이다.

여하튼 ‘달나라’라는 단어에 작은 웃음이 나왔다. “토끼보다 더 예쁜 우리 아가”라면서 번쩍 안았다. “그래 우사기-짱은 저 달나라에 가서 방아를 찧고 있을 거야.”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도 7살 어린아이와 함께 토끼가 사는 달나라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토끼하면 달나라가 연상되는데, 이건 우리나라도 일본도 마찬가지다. “토끼야 토끼야 어딜 보고 뛰느냐. 한가윗날 보름달을 보고 뛰지” 일본 동요가 입에서 맴돈다.

◇ 설화와 경전 속 토끼

12세기 전반에 불교설화와 세속설화를 집대성한 『곤쟈쿠 이야기집(今昔物語集)』은 인도・중국・일본 3편으로 나누어서 1100여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인도에 토끼와 원숭이와 여우가 살았는데, 어느 날 배가 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 나타났다. 원숭이는 나무 열매를, 여우는 물고기를 잡아서 노인에게 가져왔다. 그런데 토끼는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 몸이라도 드십시오”라면서 모닥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실 이 노인은 제석천이었다. 토끼의 자비심에 감동한 나머지 이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달나라로 올려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도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과 관련서적에도 실려 있다. 『대당서역기』에는 ‘이것은 석가여래가 수행을 할 때 몸을 태운 것이다’는 구절이 있고, 『경률이상』에는 ‘부처가 이르기를, 그때의 토끼가 바로 나다’는 구절이 더해져 있다.

그렇다면 달 속의 토끼는 석가여래가 해탈하기 전, 이른바 부처의 전생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불교 전파를 통해서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삼족오와 토끼

몬무천황(文武天皇)이 701년 정월 하례인사를 받을 때, 정문의 왼쪽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의 그림을, 오른쪽에는 달을 상징하는 토끼의 그림을 둥근 판에 붙여서 달았다는 기록이 『속일본기』에 있다.

732년 쇼무천황(聖武天皇)이 하례인사를 받을 때 처음으로 빨간색 ‘곤면’이라는 정복을 입었는데, 곤면의 왼쪽 어깨부위에 검은 새가 그려진 금색 원, 오른쪽 어깨부위에 토끼와 두꺼비 그림이 담긴 은색 원을 수놓았다.

10세기 초에 완성한 법령집 『엔기시키』에는 ‘삼족오는 해의 상징이고, 토끼는 달의 상징이다’라는 글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의 어좌 뒤에 설치하는 ‘일월도’처럼, 해와 달은 임금의 존재를 상징하고 동시에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삼족오와 토끼는 그 역할을 대신 한 것이 분명하다.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安倍晴明)가 편찬한 『금조옥토집(金烏玉兎集)』이라는 점술전문집이 있다. 금조는 태양에 사는 태양의 화신이라고도 하는 금빛으로 빛나는 까마귀 ‘삼족오’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영험한 새이다. 옥토는 달에 사는 옥토끼인데 달을 상징한다. 즉 이것은 일월의 운행을 가지고 점을 친다는 음양사의 비전서이다. 여하튼 삼족오는 태양을, 토끼는 달을 상징하는 것을 재확인하는 바이다. 

◇ 파도 위의 토끼

나는 요코의 딸에게 달나라의 토끼 그림이 있는 뭔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달이 아니라 파도와 짝을 지은 토끼가 여럿 있어서 이건 또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봤더니, 노의 요코쿠(謡曲) 『치쿠부시마(竹生島)』에 토끼가 등장하는 소절이 있었다.

요코쿠는 전해오는 전설이나 설화를 가지고 무대에 올리는 노의 사장(詞章), 이른바 연극으로 말하면 각본에 해당하는 것이다. 특별한 건 아니다. 다이고 천황(醍醐天皇, 885~930)의 신하가 치쿠부시마 섬에 모신 변재천을 참배하러 가는 길에 배를 얻어 타는데, 봄날 잔잔한 호수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시를 읊는다.

“섬의 우거진 초록 나무의 그림자가 호반에 비치니 마치 물고기가 나무를 오르고 있는 것 같다. 달도 호수위에 비치니, 달에 사는 토끼가 파도 위를 뛰어다는 것 같다. 정말 멋진 섬 풍경이다.” 

‘토끼’라고 하면 ‘달’이다. 토끼와 파도를 짝지어서 그린 그림은 아마도 변재천을 만나러 가는 『치쿠부시마』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 같다. 여하튼 이것도 달에 토끼가 산다는 전제하에 나온 발상이다. 토끼가 파도 위를 뛰어다닌다고 한 것은, 물 위에 달이 비치니 달 속의 토끼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술 흥에 겨워 물속에 뜬 달을 건지려다 죽었다는 이태백은 아니지만, 봄날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물인지 땅인지 하늘인지 혼미해진 상태에서 이런 시를 읊었을 것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69년 7월의 일이다. 그럼에도 달에는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달나라 토끼를 운운하면서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노래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정서가 아니다. 일본 하늘에 떠있는 저 달에도 토끼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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