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고선윤 논설위원 = 일본에는 어떤 인사말이 있을까? 학기 초 첫 수업이라 아직 히라가나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상당히 많은 인사말을 알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먼 나라가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강남의 한 회전 스시집을 갔더니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를 시작으로 먹고나가는 뒤통수에다 “아리가토고자이마스(あ有難うございます)”까지 참 씩씩하게도 인사를 해서, 일본말을 잘 하는 친구들만 일할 수 있는 곳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본까지 10만원대의 저가항공도 있다면서 아르바이트로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주말을 이용해 일본을 다녀오는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 인사말 하나 둘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손을 든다.
‘오하요고자이마스’, ‘곤니치와’, ‘곤방와’. 아침, 점심, 저녁, 때를 달리하는 인사말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설명하는 한 친구의 말에 감탄이 쏟아졌다. 나는 선생이니 조금은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겠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인사말에 대해서 말이다.
‘오하요고자이마스(お早うございます)’는 아침인사다. 우리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도 ‘Good Morning’도 다 가능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니 오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이 인사말이 가장 좋을 것이다. ‘오하요’만 쓴다면 반말이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는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오하요-고자이마스’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손녀딸에게도 이 말을 쓸 수 있으니 우리는 ‘오하요고자이마스’라고 기억하는 것이 더 좋겠다.
그런데 ‘오하요고자이마스’는 아침에만 쓰는 인사말이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인사말을 쓴다. 그러니 밤 11시에도 12시에도 쓸 수 있는 인사말이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곤니치와와 곤방와에는 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것이 설사 야간일지라도 ‘오하요고자이마스’라는 인사말이 오고간다.
일본사람들의 입에 붙어 다니는 죄송하다는 의미의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는 인사말도 재미나다. 길을 가다 살짝 스쳐도 ‘스미마셍’, 가게에 들어가서 “나 좀 보세요”라고 말을 걸 때도 ‘스미마셍’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죄송하다기보다는 실례하다는 의미일까. 지하철에서 발이 밟히면 “스미마셍”이라고 하고 밟은 사람도 “스미마셍”이라고 한다. 밟혀서 죄송합니다. 밟아서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저기요, 발 좀 치워주세요”라는 말이고, “아이구, 죄송합니다”는 말이다.
사실 인사말이란 대상을 두고 하는 말이라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 오고가야 제맛이다. 상대의 인사말에 대해서 적절한 인사말이 오고가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의 인사를 씹는다는 것은 훗날의 불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엉뚱한 답변 역시 그 사람의 교양을 의심하게 한다. “다녀오겠습니다(行ってきます)”-“잘 다녀오십시오(行ってらしゃい)”, “다녀왔습니다(只今)”-“잘 다녀오셨습니까(お帰りなさい)” 등의 인사말이 한 쌍을 이룬다. 처음 만났을 때는, “처음 뵙겠습니다(はじめましで). 잘 부탁드립니다(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라고 하면 “저도(こちらこそ)”라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인사말이 오고간다.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의 인사는 어떨까, “오래간만입니다(久しぶりです)” “잘 지나셨나요(お元気でしだか)” 여기까지는 별반 특별한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다음 어떻게 이어질까. “네. 잘 지냈습니다. 당신은?” 이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중학교 영어교과서에서 본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일본이다. 일본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재밌게도 그들은 “덕분에(おかげさまで)”라고 답한다. 오랫동안 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덕분에 잘 살았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나는 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으니, 그러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당신 덕이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여하튼 이렇게 답하는 것이 관례다. 오만가지 신들이 존재하는 나라인지라 세상만사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 지낸 것은 산신(神)이, 바다신이, 젓가락신이 별 탈 없이 잘 살게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나에게 이런 만남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산 것이 10년은 훨씬 지난 것 같다. 대구사람들이라 지네들끼리는 곧잘 만난 모양인데 타지에서 사는 나에게는 반가움 그리고 살짝 어색한 순간이었다. 그리 존재감이 있는 아이도 아니었으니 ‘너 누구냐’는 얼굴을 한다면 어쩌나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한 친구가 다가와서 “야, 문디 가시나! 니 안 뒤졌고 살았네”란다. 날카로운 억양에 너무 놀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이 말에 나는 시간도 공간도 넘어 그 집단 속으로 쑥 끼어들었다.
그래. 이거야말로 살아있는 인사말이 아니겠는가.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