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픽사베이)

[뉴스인] 허영훈 기자 = 거리를 다니다보면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현수막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TV와 라디오를 제외하고 짧은 시간에 함축된 정보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현수막이었다. 요즘도 자치단체나 정당이 지역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현수막보다 좋은 홍보수단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보니 선거기간이 되면 도로 곳곳에는 각 정당이 내건 공약 현수막이 거대한 물결을 이룬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현수막이 정부나 정당의 가장 필수적인 정보전달매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떤 현수막을 보면 ‘꼭 저런 걸 내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OOO 폐지, OO당이 해냈습니다’ ‘OOO, OO당이 가장 먼저 실천하고 있습니다’ ‘OOO는 OO당의 정치이념과 일치합니다’와 같은 것들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정부나 정당 스스로가 잘했다고 칭찬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왠지 부끄럽고 어색해 보인다. 반대로 ‘OOO, 우리 OO당이 잘못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OOO의 주범은 바로 우리 OO당입니다’ ‘OOO, 정부가 망쳤습니다’와 같이 자신의 과오와 그에 따른 책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현수막은 절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소위 ‘현수막 정책’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을까? 바로 ‘알맹이 없는 정보의 일방통행’에 있다. 내용이 거짓이든, 시기상조든, 과장이든 간에 일단 무조건 던져놓고 보겠다는 숨은 의도가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민심을 유도하는 ‘미끼’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문제가 생기면 현수막을 철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일까?

현수막 정책은 거리의 현수막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기자회견장에 올라온 정치권의 ‘말잔치’가 그것들이다. 정부가 대변인이나 수석을 통해 어떤 내용을 발표하면 여당은 지지를, 야당은 비난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언젠가부터 여야는 상호 반복적인 논쟁을 벌일 때 항상 현수막과 같은 폼 나는 머리글을 발표자료 맨 앞에 내걸기 시작했다. 이해를 돕기보다는 발표문의 정당성을 순식간에 국민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역시 현수막 정책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스 제목과 같이 자극적이거나 강한 한줄 문구로 국민들의 긍정적 반응을 당장 끌어 모으는 데만 급급해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최근 ‘살충제 달걀’ 사건으로 도마에 오른, 지난 2013년 정부가 ‘식약청을 식약처로 승격시켰다’는 보도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목만 보면,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더 중요한 상급기관으로 재정비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돋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결국 현수막 정책이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공통된 비난의 목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름만 바뀌면 뭐하냐? 내부 시스템이 그대로인데”이다. 이것이 바로 현수막 정책의 ‘虛(허)’다.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도 없이 껍데기만 존재한다는 의미다.

현수막 정책은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현수막 문구가 진정한 민심을 모으려면 문구에 그 이상의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아무리 명품 옷에 명품 시계를 걸쳤다 해도 그것들을 걸친 사람이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 차있다면, 주위 사람들은 그런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아무리 멋진 제목이나 사자성어로 발표자료를 포장하고, 머리에 쏙쏙 박히는 현수막 문구로 국민의 관심을 끌어당기려고 해도, 속이 비어있는 현수막 정책은 점점 갈 곳이 없음을 정부와 정치권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현수막 정책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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