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픽사베이)

[뉴스인] 허영훈 기자 = 지난 11일 SBS는 방위사업청이 지난달 미국 방산업체들과 맺은 사업계약 가운데, 계약서 번역을 잘못해서 200억 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핵심 내용은 사업 중단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 방산업체들에게 '합의각서에 명시된 대로 입찰보증금을 반환하라'고 했지만 업체 측은 영문 계약서에 의하면 '업체 측 의무 불이행이 유일한 이유인 경우' 즉, 계약 불발의 모든 책임이 오직 업체 측에 있을 때만 지급 의무가 있다며 입찰보증금 반환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통상 이런 불상사를 대비해 넣는 '국문계약 우선조항'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영어점수 높은 대졸 출신을 공무원으로 앉혀놓으면 뭐하냐, 번역도 제대로 못하는데’ ‘문서 하나도 다루지 못하면서 무슨 협상을 하겠냐’ 등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사안은 단순히 영문해석의 오류만으로 취급할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계약서를 검토하거나 작성하는 데 있어 정부나 산하 기관이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기본적으로 계약을 다루기 위해서는 관련법 이해는 물론, 계약 내용, 효과와 관리,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와 그에 대한 안전장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계약서에 반영시켜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계약해지에 따른 최악의 경우(worst case)를 대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문계약서 검토를 소위 ‘영어 잘 하는’ 영문학과 출신 직원에게만 맡겼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공통된 의문점은 일처리의 무게중심을 이론이 아닌 실무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론이 중요하냐, 실무가 중요하냐’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면 ‘둘 다 중요하다’고 답변하면서도 업무에 들어가면 ‘실무를 잘 해야지 이론만 가지고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대답을 꺼내놓게 된다.

이는 일을 빨리 진행시키거나, 기한을 단축하거나, 당장의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지만,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 수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대형사건사고들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 성격을 같이한다.    

기업에서 개발부서 등 실무부서나 기획팀이 외국업체로부터 영문계약서 초안을 이메일로 받으면, 보고라인 자체검토와 동시에 법무팀으로 계약서 검토를 의뢰한다. 이 과정에서 해외담당변호사와 실무진 그리고 기획팀과 경영지원팀 등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구성되고 내부논의과정이 이어진다.

논의에서 도출된 결과에 따라 수정 또는 보완된 영문계약서를 외국 업체에 다시 보내는데, 이렇게 이메일로 오가는 과정이 몇 번 되풀이되면 계약내용을 최종 확정하기 위한 업체 간 미팅 후 계약내용에 합의해 서명에 이르게 된다.

계약업무에 대한 최초 실무자가 정해지지만 실제 계약을 다루는 데는 ‘워스트 케이스’를 대비하기 위해 변호사의 법적인 전문지식과 이론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요즘 기업들은 ‘경력사원 같은 신입사원’을 원한다고 한다. 실무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없는 실무는 없다. 사회의 모든 결과물은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 방위사업청 영문계약해석의 오류는 기본적인 원칙과 자세를 간과한 사례다. 사회 전반에 이론의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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