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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춤추다] 무조음악 오페라 '보체크'오페라는 죽지 않았다①
정경 논설위원 | 승인 2017.07.11 14:48

*클래식 예술의 한 장르인 오페라(opera)를 널리 알리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바리톤 성악가 정경의 교육 칼럼 [오페라와 춤추다]를 뉴스인에 연재합니다. 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는 예술에 관심이 높은 사회인과 학생들에게 예술 상식과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오페라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바리톤 정경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 무조음악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클래식 음악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18세기와 19세기를 주름잡던 낭만주의 시대가 물러나면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드뷔시를 필두로 인상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암시와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인상주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에 새로운 색감을 입히려는 시도였다. 음악에 색감을 입힌다는 은유적인 표현은 기존의 클래식 음악이 어떤 강렬한 감정이나 이야기 전달에 중점을 둔 것과는 달리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상징을 내비치면서 작품 주제에 맞는 분위기 조성에 무게 중심을 둔다는 의미이다.

활발한 듯 보였던 이러한 시도는 빠르게 시들해지고 만다. 예술의 시대적 사조가 간접성보다는 ‘새로움’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이 새로움이란 과거의 것과 결별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 결별 대상 중에는 음악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인 ‘조성’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음계라고 생각하며 인식하는 이른바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벗어나 12음계를 모두 사용하는 음악이 작곡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조성이라는 요소에 균열이 간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사실상 그 시작은 바그너의 작곡활동 때부터였는데, 그는 끊임없이 전조를 하거나 불협화음을 사용하면서 기존의 화성적 체계를 흔들어댔다. 바그너의 뒤를 이은 인물은 바로 쇤베르크였다. 쇤베르크는 “조성은 영원한 법칙이 아니며 음악 형식의 성취를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보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주장하며 무조음악이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자유자재로 불협화음을 다루며 본격적인 무조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한 쇤베르크의 대표작은 바로 '바르샤바의 생존자(A Survivor from Warsaw)'라는 곡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사건을 비판하는 내용의 이 곡은 도입부에서부터 화성을 파괴하면서 음산한 곡의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쇤베르크의 음악적 경향은 그의 제자인 알반 베르크로 이어졌다. 베르크는 ‘표현주의의 폭발’, ‘무조음악을 사용한 최초의 극장용 오페라’로 불리는 오페라 '보체크'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1925년 베를린에서 초연에 오른 이래로 11년간 29개 도시에서 166회나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결국 나치의 탄압으로 공연이 금지당한 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 나치가 몰락한 뒤에야 다시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베르크는 '보체크'에서 사실주의와 계급 문제를 무조음악으로 묘사했다. 기아에 영양실조까지 겹친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 전체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데, 이러한 설정은 두 차례나 세계대전에 휩쓸리고 가난과 기근에 고통 받는 하층민의 심리를 파고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주인공은 결국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신을 배신한 연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1막 1장에 등장하는 음악 '우리 가난한 사람들(Wir arme Leut)'은 무조음악과 더불어 극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내는 곡이다. 다음은 이 곡에 등장하는 한 구절이다.

“우리네 같이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대장님, 모두가 돈, 돈 때문입니다. 돈 없는 놈은 도덕이고 뭐고 자식새끼도 그렇게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놈들에게도 육체가 있고 피가 흐릅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상대로 무기력한 저항을 지속하면서 느끼는 깊은 좌절감이 배어 있는 이 곡은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결국 가난과 정신 착란을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다는 보체크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은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문제를 다루던 당대 사회주의 문학의 영향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진정하고 유일한 사회주의 오페라’라는 당대 평론의 호평을 받은 '보체크'를 두고 현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베르크의 '보체크'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오페라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평가를 남겼다.

20세기의 도래와 함께 격동하기 시작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새로운 장르와 음악을 원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클래식 음악계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는 종합무대예술인 오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이야기 전달 방식과 연출로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오페라는 그 생존을 위해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탄생될 필요가 있었다. 고전적인 전통과 풍미를 잃어버린다는 일각의 비판도 존재했으나 오페라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
이어지는 제50화에서는 《 오페라는 죽지 않았다 中 》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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