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픽사베이)

[뉴스인] 허영훈 기자 = 지난달 22일 청와대는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의 인사지원서와 면접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출신지역,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과 학력 등 지원자의 인적사항을 삭제하고 실력 중심으로 평가하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각계도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실 블라인드 평가의 대표적인 사례는 음악 콩쿠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대와 심사위원석 사이에는 커튼이 쳐져있고 심사표에는 제비뽑기로 정한 순서 외에는 연주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볼 수 없으며, 어느 학교 출신에, 어떤 수상경력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오직 현장에서 귀로만 듣고 실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아주 공정한 평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블라인드 평가에도 비리와 약점이 있다. 사전 심사위원과 연주자가 공모해서 경연 직전 악기를 튜닝할 때 특정 음을 낸다거나 기침소리 등 사전 약속된 신호로 보이지 않는 소통을 하는 것이다. 또는 지정곡 발표 훨씬 전에 특정 연주자에게 해당 곡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미리 충분한 레슨과 연습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경우 평소 실력은 경쟁자들보다 부족해도 한 곡을 집중해서 연습했기 때문에 콩쿠르 당일에는 훨씬 우월한 연주 실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블라인드 채용도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지원서와 면접에서 인적사항을 빼는 것이 ‘블라인드’ 효과를 충분히 가져다주느냐다. 실력 중심으로만 지원자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 ‘실력’의 주된 내용과 평가요소는 무엇일까. 경력? 실적? 아니면 면접의 기술? 이러한 것들이 실력을 평가하는 객관적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첫째, 최종 면접에 오르기까지의 단계별 심사절차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자칫 공기업 지원을 대비한 대필 및 면접학원만 성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원서의 첨부자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원칙을 고수할 것인지, 지원서에는 명시하지 않지만 면접 전에는 반드시 해당 첨부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또는 인적사항이 없는 지원서 평가단계에서도 탈락기준을 마련할 것인지 등이다.

둘째, 실력을 확인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Q&A식 면접을 떠나 해당 업무분야 전문성을 검증하기 위해 무작위 키워드를 준비해 제시하고 지원자가 그에 대한 설명과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직무수행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도 있어야 한다. 대기업에서 실시하는 ‘기술면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셋째, 실력에는 반드시 ‘인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실력만 보고 뽑는다는 것이 인성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심사절차의 보완과 실력 확인 장치를 마련하고, 인성검증 등과 관련해 블라인드 채용이 가진 약점을 보완하는 작업에 전문가를 우선 배치해야 한다. 실력확인을 위한 2중, 3중장치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관성 있는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 면접위원에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정한 채용에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채용 후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내부환경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편견이 공정한 채용을 방해하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실력 있는 지원자를 선별하는 데 분명 편견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력’ 중심으로 선발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배제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정사회구현을 최우선 정책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실력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 기조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실력만으로 채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공정한 평가에 집중하게 되면 실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데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전에 정부는 공정한 채용을 위한 ‘편견’과 ‘실력’에 대한 정확한 의미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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