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허영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문화예술지원에 관해 약속한 내용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겠다”였다. 이와 함께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에서 내놓은 문화예술정책공약 중 눈여겨 볼만한 키워드는 ‘공정한 대가’와 ‘공정한 거래’다.

사실상 과거 정권들이 제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문화예술계에서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희망고문’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문 대통령의 원칙이 올바로 이행되기 위해서 먼저 ‘지원’에 대한 정확한 의미, 그리고 대상과 범위에 대한 고민부터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더불어 ‘간섭’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그 대상은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를 상세하게 정리해야 한다. 말과 실행이 따로 움직이는 소위 ‘캐치프레이즈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실행을 위한 선행연구도 더 이상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의 어떤 간행물에도 문화예술인에 대한 신뢰할만한 통계자료가 없다. 분석에 활용할만한 데이터베이스는 더더욱 없다. 예술경영대학원생들이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정리한 석사학위논문의 설문조사결과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어떻게 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한단 말인가.

이에 문화예술인 실태파악을 위한 전수조사를 정부에 제안한다. 그 예산도 당연히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예술인들 역시 양심에 따라 그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계속 물만 붓는 지원은 모래 위에 건물을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분석결과가 아닌 분위기에만 의존하는 정부의 무분별한 지원사업이 오히려 예술인들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부작용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문화예술인을 대하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기업의 방침들도 달라져야 한다. 서서히가 아니라 법제도를 통해 당장 달라져야 한다. 특히, 초청공연 등 무대에 예술인을 올리기 위한 모든 원칙들이 새로 마련되거나 수정돼야 한다.

기업초청연주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업에는 이와 관련한 숨은 원칙들이 있다. 전화나 문자로 출연을 확정하고, 출연료는 기업이 정한 금액에 맞춰야 한다. 별도의 출연계약서가 없으며 몇 시간 전에 와서 리허설을 해야 하거나 아예 리허설이 없는 경우도 있다. 별도의 대기실이 마련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출연료 지급기한과 절차 역시 기업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철저하게 갑의 입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계약이다.

물론 섭외를 대행하는 중간 업체들이 그러한 갑질을 대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주자들은 그렇게 문자 몇 줄만을 믿고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유행성 질병이나 대형사고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공연을 취소한다. “아시겠지만, 지금 분위기가 그래서요”가 그 이유다.

연주자들은 그 공연을 위해 일정을 조정하고, 프로그램을 고민하며, 수차례에 걸친 편곡작업과 연습을 하고, 의상과 헤어메이크업 등을 순차적으로 준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나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미 각계에서는 공연과 관련한 표준약관, 표준계약서 등을 마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약관이나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 당사자 간에 주고받은 문자나 e메일만으로도 공연확정에 대한 계약의 완전한 성립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공연확정 후 일방의 취소로 인해 상대방에게 발생한 유·무형의 손해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수준에 입각한 손실 또는 손해배상액의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긴장정도는 기업과 연주자 모두가 같아야 하겠지만, ‘그냥 연주만 하면 된다’ 식의 갑질 마인드는 분명 우선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예술인을 위한 복지정책 역시 ‘매월 얼마를 지원해준다’ 또는 ‘작업 공간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식의 선심정책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대학졸업 후 무분별한 해외유학길에 오르거나 예술단체에 소속되거나 대학 강사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바치는 등 잘못된 사회 분위기부터 없애야 한다. 예술인 대부분의 생계수단이 개인레슨이라는 점도 분명 집중해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복지정책이라고 반드시 제로에서 플러스를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 마이너스 상태를 잘 파악해서 제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인들에게 무엇을 해 줄까 고민하기 전에 문화예술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갑질과 같은 것들을 먼저 제거하는 것을 정부와 관련기관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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