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허영훈 기자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다 벌어진 후에야 뒤늦게 조치한다는 뜻으로 보통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시는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더욱 튼튼하게, 그리고 빈틈없이 고쳐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정농단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고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어리석음을 탓하는 수준을 넘어 제대로 고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한 이 때, 국정을 받치고 있는 시·군·구 농단사건은 없는지 동시에 점검이 필요하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도 맑을 리 없으니 이 기회에 대대적인 수질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조사가 쉽지 않은 영역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이다. 사업타당성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조차 만만하지 않은 문화예술분야는 늘 말이 많으면서도 사건으로 규정짓기가 어렵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잡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문화예술정책은 물론 문화예술교육분야도 마찬가지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1차적으로는 문화예술분야 공공기관을 고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시·군·구 단위 문화재단이나 산하예술단체 등에서 오랫동안 이어왔던 농단사례는 과연 없었을까?

2014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퇴진시킨 사건을 떠올려본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를 잃은 사건보다 외양간을 고치는 작업에서다. 외부 인사를 대상으로 한 신임 대표이사 1차 공모에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2차 공모를 진행한 서울시는 2015년 6월, 전 하나금융지주 사장을 신임대표로 임명했다.

거대했던 진통에 비하면 그동안 어떤 후보들이 지원했으며 어떤 절차에 따라 왜 금융권 출신의 지원자가 최종적으로 임명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스스로 지원했는지조차도 알 수가 없다. 단순사실보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이 모두 제출해야만 하는 직무수행계획서에 대한 아웃라인이라도 최소한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국민의 알 권리가 조심스럽게 감춰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시는 올해 서울문화재단 선임직 이사 공고를 낸 이후 개별통보 절차만으로 지난 5월 1일 신임 이사를 선출했다. 그러나 누가 선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관련보도도 찾아볼 수 없다. 서울문화재단 담당자의 답변에 따르면 이사등기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고 나중에 재단 홈페이지에 이사 명단을 업데이트 한다는 것이다. 규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서울시 구 단위의 문화재단 이사 선출과정 역시 서울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고는 하면서도 선출과정과 결과는 자발적으로 공개할 의지들이 없어 보인다. 왜일까? 

다시 중앙정부로 올라가보자. 문화예술계는 이미 2015년, 아니 그 이전부터 문예진흥기금 고갈을 우려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문제점과 그 심각성은 아는 사람만 안다. 기금 고갈의 해결방안으로 같은 해 정부가 문예진흥기금을 지역발전특별회계로 전환하려 한 시도로 각 문화재단이 들고 일어났던 일 역시 작은 해프닝으로 지나갔을 뿐이다.

그 문제점과 관련해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한 2015년 세미나에 참석했던 필자는 발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지역발전특별회계 전환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문예진흥기금 고갈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했어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문예진흥기금은 1972년 공포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이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기금이다. 이 기금의 지원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며 이와 같은 목적의 지원사업은 각 지역문화재단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사업대상자 선정에 대한 공정성과 사업타당성에 대한 평가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년 되풀이되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과연 바뀌겠냐는 의견도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지난 8일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회장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아직 공석이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고질적 병폐는 대표자 한두 명의 사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위로부터는 물론이고 아래로부터도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눈먼 돈’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만연한 각종 사업의 문제점들을 원점에서, 그리고 다른 각도로 조사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새 정부가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가동시켰다. 이번 기회에 문화예술분야정책을 더욱 심도 있게 다루길 바란다. 문화예술부문에서 잡초처럼 자라나고 있었을 시·군·구 농단의 주연과 조연들에게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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