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허영훈 기자 =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청와대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대통령 임기 개시와 동시에 내각구성 등 과제가 산적한 새 정부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여야합의다. 제19대 대통령 후보들은 유세기간 내내 민감한 국내외 현안들에 대해 정치권이 서로 협의해서 해결하겠다는 약속과 그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과거 정치권을 돌아볼 때 서로 지속적인 협의는 시도했지만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사례는 수 없이 많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합의의지가 아예 없었거나, 둘째, 합의기술이 부족하거나, 셋째, 합의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합의의 정확한 의미와 함께 합의기술의 부족을 지적하고 싶다.

협의(協議)는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의논하는 것’, 즉 논의(discussion)에 머무는 것을 의미하는 한편, 합의(合意)는 서로 의견을 일치시키는 동의(agreement)를 의미한다.

이러한 협의와 합의는 계약상에서 더욱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본 계약내용의 변경은 사전 협의로 가능하다’와 ‘본 계약내용의 변경은 사전 합의로 가능하다’가 어떻게 다른가? 사전에 일단 대화만 나누어도 변경할 수 있다는 것과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절대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합의를 이렇게 표현한 학자도 있다. ‘합의라고 하는 것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붓을 들고 지나가던 아이가 검은색 점을 도화지에 찍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그 검은색 점을 그대로 그림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고 계속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의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야기다.

필자는 반도체분야 국내 대기업에서 수년 간 국제계약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통상 외국기업과의 계약은 사전 실무자 협의나 양사 간 양해각서 등을 근거로 원천기술을 가진 외국기업에서 먼저 계약서 초안을 보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협상이 길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이유는 초안에 너무 많은 요구를 담았거나 수용하기 힘든 내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사에서는 그 초안을 수정해서 그에 상응하는 요구나 반대의견을 담은 수정계약서를 상대회사에 보내게 된다. 결국 계약은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런데 주거니 받거니 하던 그 계약이 결국 성공적인 합의에 이른다. 그 이유는 서로가 항상 ‘양보 보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계약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합의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으로부터 무조건 양보를 얻어낸다거나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면서 상대방이 전적으로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계약협상에서 볼 때 일방의 모든 의지를 담은 계약서 초안을 사전 협의도 없이 상대방에게 툭하고 던져놓는 것은 원만한 합의자체를 선제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거래상의 기본적 예의에도 어긋난다.

합의기술의 원칙은 ‘적극적인 양보’와 ‘이해의 요구’ 그리고 그에 앞선 ‘정확한 사실전달’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목적’이 상호간에 분명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 정부와 여야는 불안한 상황을 일시모면하기 위한 애매모호한 협의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여야는 서로에게 툭 하고 던지는 의견전달로 등을 돌리는 상황을 애써 조장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정중한 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하는 충분한 노력, 그리고 솔직한 양보 보따리를 풀어놓을 아량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부내각이 출범을 앞두고 있는 지금, 여야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동의 목적이 분명한 현안에 대해서는 힘겨루기식의 협의가 아닌 진정한 합의의 길을 걷기 위해 적절하고 올바른 합의기술을 적극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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