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뉴스인] 허영훈 기자 = 지금 우리사회의 가장 심각한 병은 무엇일까? 필자는 ‘척’이라고 말하고 싶다. ‘척’은 사전적 의미로는 겉으로만 그럴 듯이 꾸미는 거짓된 태도를 말하는데,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정당한 척 등이 그 대표적인 증상이다.

무조건 명문대만 합격하길 바라는 부모의 교육방식, 삶의 질보다는 보유한 자동차 모델이 무엇인지에 더 민감한 소비기준, 남이야 어쨌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 자신의 주장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더 익숙한 토론문화, 유학은 다녀와야만 인정받을 것 같은 성장기준, 안정적이거나 선호하는 직업만이 좋은 직업이라고 단정 짓는 선택기준, 일자리만이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대안이라는 정부정책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근본적으로는 ‘척’에서 비롯됐다.

그럼 이러한 ‘척’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분위기’다. 올바른 가치를 정해놓고도 주위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잘못된 사회인식의 결과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부든 무능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 그럼 무엇에 대한 무지일까? 필자는 이것을 ‘기획의 무지’라고 설명한다.

기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척 대답들을 한다. ‘어떤 계획을 세우기 전에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기획의 정확한 정의는 다른 곳에 있고 의외로 간단하다. 한자를 풀이하면 바랄 ‘企’, 새길 ‘劃’으로, 기획은 ‘바라는 것을 새기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획력(企劃力)이라고 하는 것은 ‘바라는 것을 새기는 능력’이 되며 그 능력의 1차적 결과물을 보통 우리는 메모라고 부르거나 전문적으로는 기획안(企劃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에는 이 기획이 없다. 기획에 대한 인식도 없고 그 방법도 모른다. 그러니 청년도, 직장인도, 노동자도, 공무원도, 정치인도, 교육자도, 예술가도 기획을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다들 기획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그 본질과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의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는 ‘핵심가치’다.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변하지 않는 중심원칙을 의미한다. 둘째는 ‘백지’다. 새로운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과거 실행한 기획안을 일부만 수정해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같은 상태에서 수많은 고민과 함께 근거들을 만드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공부’다. 10장 분량의 기획안 본문에 그 보충 자료가 되는 별첨이 100장 이상 만들어지는 공부과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올바른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올바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이치다. 이 세 가지가 창조적 사고와 결합되면 기획의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결여돼도 기획은 물거품이 된다. 아니, 물거품이 되어야만 한다. 필자는 ‘사회의 모든 문제는 기획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대형사고, 매년 바뀌는 입시정책, 줄어들지 않는 빈부의 격차,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불안한 한반도 안보정책, 그리고 최근 세월호 사건과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정말 누군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대로 기획을 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기획전문가 입장에서 거듭 지적하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올바른 기획전문가가 적소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기획전문가는 누구여야 할까? 바로 대통령이다. 인기나 숫자에만 민감한 좋은 대통령인 척을 할 것이 아니라 국정운영과 국민을 위하는 일의 핵심가치를 바로 세우고, 잠깐의 미봉책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백지상태에서 고민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기획전문가가 대통령이 돼야만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여기서의 준비가 바로 기획이다. 정부 각 부처가 기획조직과 그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새 정부를 위해서는 백지상태에서 재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소위 ‘공무원 마인드’를 없애는 것이 새 대통령의 첫 번째 과제여야 한다.

더욱이 혁신과 혼란을 동시에 가져올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각 분야의 기획전문가 배치를 조속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미 작년과 올해 기획재정부와 교육부에 기획전문가 자문회의 구성과 대학 내 기획전문가 센터 설치를 제안하고 현재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은 그 선택기준에 국정운영을 올바로 기획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이며, 당선된 대통령은 척하지 않는 기획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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