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 기자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미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대한민국의 국가목표 중 가장 큰 과제는 아마 남북통일이다. 그래서 분단국에 대한 연구도 많다. 독일이 가장 많이 언급됐을 것이다. 하지만 몰도바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다. 몰도바 동부에 있는 공산주의 지지자들은 소련 붕괴로 독립한 몰도바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공산주의를 유지한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몰도바 공화국을 선포했다.

1991년 이후 몰도바 중앙정부는 자기네 영토의 동부를 실질적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름도 생소한 몰도바는 어떤 역사를 지녔기에 오늘날 이렇게 분단되어 있을까? 이 답을 몰도바 화폐를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1레우 뒷면 카프리아나 수도원(Capriana monastery)

몰도바 화폐 1레우(leu, MDL) 뒷면에는 정교회 수도원이 보인다. 카프리아나 수도원(Căpriana Monastery)이라고 하는 이 성당은 몰도바에 있는 가장 오래된 종교 장소 중 하나다. 몰도바의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한 이 수도원은 1429년 몰도바 공국의 알렉센더(Alexander the Good) 1세의 지시로 세워졌다고 한다.

알렉센더(Alexander the Good) 1세는 몰도바 공국을 세운 보그단 1세의 증손자이다. 보그단 1세는 원래 헝가리 왕국의 몰도바 주에 총독부로 임명된 무신이지만 1360년경 독립했다.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 사람들이 몰도바를 보그단이라고 부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레우 뒷면 소로카 요새(Soroca castle)

몰도바의 탄생을 요약하고 난 뒤 다음은 몰도바의 중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20레우 뒷면에는 소로카 요새(Soroca Fort)가 보인다. 소로카 요새는 1499년 몰도바 공국의 공작, 슈테판 3세가 지은 성이다. 모든 몰도바 화폐 앞면에 초상화가 독점적으로 실린 인물이 바로 슈테판 3세다. 슈테판 3세를 알아야 몰도바를 알 수 있다.

몰도바는 한마디로 유럽 입장에서는 북동쪽에서 올 수 있는 위협을 막는 전쟁터였다. 몰도바는 동방 세력에게 빼앗기면 절대로 안 되는 지역이었다. 몰도바는 예전에 유럽을 몽골계 금장 칸국(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보호했고, 다음에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보호했다.

오스만 제국과 몰도바 공국의 대결 역사에서 슈테판 3세 자리는 특별하다. 바슬루이 전투(Battle of Vaslui)에서 슈테판 3세는 6만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10만 명이 훨씬 넘는 오스만 제국 군대를 이겨서 대승리를 얻었다.

20레우 앞면에 나와 있는 슈테판 3세 초상화(Stephen the Great)

교황청까지 희망이 없다며 지원군을 안 보냈지만, 슈테판 3세가 승리한 비밀은 터키 사람들의 군사 전략으로 유명한 초승달 작전을 터키 사람들에게 작동하고, 오스만 제국 군부를 황당하게 만든 것이었다. 슈테판 3세의 승리는 오스만 제국의 첫 패배였고, 그 패배로 유럽은 오스만 제국의 연합군을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수많은 성당과 교회가 슈테판 3세를 ‘성인’으로 모셨다.

슈테판 3세의 황금기를 보낸 몰도바는 불과 40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538년 몰도바를 정복했지만, 기존에 있던 공작의 작위와 가문을 인정하고 몰도바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3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몰도바 동부는 1812년에, 나머지 부분은 1856년에 러시아 통치 하에 들어갔다. 몰도바는 이제 유럽과 러시아 충돌의 전쟁터가 되었다.

러시아는 19세기에 본슬라브 정책으로 동유럽에 진출하려고 했다. 몰도바 역시 러시아의 파일럿 지역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그 당시 몰도바에 많은 지원을 했다. 성당을 만들고, 학교를 지었다.

500레우 뒷면 키시너우 성당(Chişinău cathedral)

그 당시 러시아로부터 세워진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는 500레우 뒷면에 있는 키시너우 성당이다. 1830년 건설된 키시너우 성당은 역사 유적지일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 중심지에 있어서 많은 시위가 일어났던 장소다.

다시 러시아 제국의 동유럽 팽창으로 돌아가면, 1881년 루마니아 왕국이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동유럽 진출은 어느 정도 느슨해졌다. 몰도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루마니아 왕국 인구의 다수인 루마니아족과 비슷한 민족이기 때문에 러시아 제국보다는 루마니아 왕국에 더 친근감을 느꼈다.

200레우 뒷면에 나와 있는 키시나우 시청(Chişinău City Hall)

러시아 제국도 역시 몰도바를 더 많이 발전시켜 몰도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대표적인 예는 200레우 뒷면에 보이는 키시나우 시청이다. 오늘날까지 시청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1년 러시아 제국 국회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1차 대전 시기 러시아 제국이 약해지면서, 몰도바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일부 영토를 잃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루마니아 왕국은 몰도바를 합병하고, 민족을 통일했다. 2차 대전까지 루마니아 사람들은 다 함께 같은 나라에서 살았지만 2차 대전 시기 공산주의의 선전으로 다시 이 지역에서 강해진 소련이 몰도바를 합병하고 여기서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루마니아족도 분단하게 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이 지역 많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이주해 인구 구성이 변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몰도바도 독립했다. 그러나 민족이 같다고 루마니아와 통일하지는 않았다. 달라진 인구 구성과 함께 70년 소련 지배를 받다 보니, 이제는 정체성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다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드네스트르 강(Dniester River) 동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몰도바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체제 이념 때문에 몰도바가 분단됐지만 사실은 민족 문제 때문이다. 드네스트르 강 동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모국어는 루마니아어가 아닌 러시아어였다. 따라서 새로 탄생한 몰도바 공화국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몰도바 일부 사람들은 루마니아와 통일하는 방안의 민족 통일을 논의하고 있지만, 반면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자기네 영토의 동부 지역을 실질적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영토 통일 방안에 신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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