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에티오피아 달력에는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이 같이 기입되어 있다. 달력에서 위에 기재된 숫자가 그레고리력, 아래 숫자가 율리우스력이다. 2012년 9월 11일은 에티오피아 새해라고 '붉게' 표시돼 있다. (사진=Addis Sports)

[뉴스인] 박수정 = 한 가수의 노래 제목에 ‘12월 32일’이 있었다. 12월 32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13월 1일이라는 날짜가 존재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 교육에 대한 조사작업을 하면서 현지 팀원에게 최신 자료를 달라고 부탁하면 2005년 또는 2007년 자료를 보내곤 했다. 10년 전 자료 말고 최근 업데이트된 자료로 다시 달라고 요청하면, 그게 가장 최신 자료라는 말뿐이었다. 한국에서 2017년에 살고 있는 나와 2009년에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 파트너들이 함께 일하며 겪은 해프닝이다.

자칫 들으면 이게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이라도 하는 소리인가 싶지만, 이유인즉슨 에티오피아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이 아닌 콥트 달력(Coptic Calendar)과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는 국민 다수가 그리스 정교(Orthodox)를 종교로 하고 있으며, 예수 탄생을 기원전 7년으로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반 달력보다 7~8년이 늦다. 에티오피아에서는 1년을 1월부터 12월까지 각 30일을 한 달로 보고 암하릭어로 ‘빠구메(ጰጉሜ)’라고 불리는 13월에는 5일(윤년에는 6일)이 더 추가된 달력을 쓰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유입되어 있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나 큰 도시들은 세계화 영향으로 그레고리력을 함께 사용해 에티오피아 달력에 같이 기입돼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골 외곽지역에서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달력체계를 따른다.

◇9월 11일, ‘Happy New Year!’

에티오피아에 체류하는 6개월 남짓 기간 나는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세 번의 새해를 맞이했다. 기념일을 보낸 순서도 뒤죽박죽 재미있다.

그레고리력 기준으로 9월 11일(윤년일 경우 9월 12일)은 에티오피아의 새해(암하릭어로 ‘은쿠따따쉬(Enkutatash እንቁጣጣሽ)’라고 부른다)이다. 전통적으로 에티오피아는 꽃이 피고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계절을 새해의 시작으로 본다.

1년 중 한 가운데서 새해를 한 번 맞이한 후 외국인 친구들과 12월 25일 ‘인터내셔널’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당연히 ‘빨간 날’이어야 하는 12월 25일은 에티오피아 달력에선 그저 다른 어느 보통 날에 지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달력체계 기준으로 1월 7일이다. 따라서 나는 다시 1월 1일 ‘인터내셔널’ 새해를 맞이한 이후에야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음력 달력 기준으로 2월에 찾아온 ‘설’을 맞이하면서,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번의 새해맞이를 하는 독특하고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터내셔널’ 기념일과 ‘에티오피안’ 기념일이 여럿 공존해 있던 (그레고리안 달력 기준의) 12월과 1월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기념일과 휴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말이다.

학교 수업 시간표. 1교시는 아침 2시 42분에 시작하고, 점심은 아침 6시 27분에 먹는다. (사진=박수정)

◇ "미팅은 아침 3시에 하기로 하죠!"

에티오피아에서 현지 조사를 위해 여러 초중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학교 게시판에 붙은 수업시간표에 1교시 수업이 오전 2시(2 a.m.)에 시작한다고 적혀 있어 깜짝 놀랐다.

"아니, 학구열이 대단한 아디스아바바라지만 새벽 2시부터 1교시를 시작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함께 했던 현지 팀원에게 대체 어떻게 된 교육 시스템이냐고 물으니, 교육시스템이 이상한 게 아니고 시간의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달력 체계만 다른 게 아니라 시간 기준도 다르다. 단순히 지리적 위치에 따른 시차가 아니라 시간을 보고 말하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적도 고지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연중 낮의 길이가 비슷하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일정하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한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시간. 손목에 찬 시계는 오후 4시, 에티오피아 벽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박수정)

24시간을 두 번의 12시간제로 해서, 해가 뜨는 아침 6시가 에티오피아의 0시가 되고 아침 7시가 아침 1시이다. 12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해가 지는 시간인 오후 6시가 저녁 0시가 되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타임? 로컬 타임?” 고유의 달력과 시간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에서 오후 2시(2 p.m.)에 잡힌 약속이 있다면, 오후 2시인지 오후 8시인지 반드시 날짜와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하여 바람 맞는 일은 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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