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클래식 예술의 한 장르인 오페라(opera)를 널리 알리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바리톤 성악가 정경의 교육 칼럼 [오페라와 춤추다]를 뉴스인에 연재합니다. 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는 예술에 관심이 높은 사회인과 학생들에게 예술 상식과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오페라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오페라마 토크콘서트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설명하는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베르디는 소설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을 관람하고는 대번에 이 이야기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으로 삼는다. 연극이 끝나기 무섭게 베르디는 ‘이것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라 트라비아타'를 통해 당시 유럽 상류사회를 비판하고자 하였다.

자유연애와 결혼이라는 이상이 한 차례 유럽을 휩쓸고 간 후, 사회 상류층으로 자리 잡게 된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이 타도하려 했던 귀족 문화를 오히려 흡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방탕함과 문란함을 품은 구습이 여전히 상류사회라는 그림자 속에 도사리게 되었다.

새로운 상류 계급은 결혼을 일종의 거래로 여겼으며 결혼과 사랑을 별개의 가치로 간주했다. 이는 신흥 강자인 부르주아 계급의 금전 만능주의와 결합하여 오히려 이전 시대보다도 더욱 이기적이고 문란한 사회 풍조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퇴폐와 방탕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었다. 신(新) 상류층은 자신들의 방탕함에 대해서는 합리화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중하위 계층의 비윤리적인 스캔들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쉽게 말해 새로운 신분제가 고착화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베르디는 새로이 사랑하게 된 여인 주세피나와의 결혼을 쉽게 진행할 수 없었다. 주세피나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 명의 사생아를 낳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로 인해 사회적으로 지탄과 배척을 당했으며, 이 화살은 연인인 베르디에게도 향했다. 그들은 온갖 비난과 험담, 헛소문으로 인해 크게 시달렸고, 한을 품은 베르디는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짚어내어 자신의 작품 '라 트라비아타'에 야심차게 담아낸 것이었다.

베르디는 특히 주인공 비올레타에 큰 애정을 쏟았는데, 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자신의 연인 주세피나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깊은 애정은 무대 위에서 매우 잘 드러났다. '라 트라비아타'의 공연 내내 비올레타 역을 맡은 배우는 공연 시간 대부분을 무대 위에 등장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 라 트라비아타, 원작자 뒤마 피스의 자전적 이야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 소설인 '동백꽃 여인'은 작가가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19세기 중반의 파리, 갓 스무 살이었던 뒤마 피스는 상류층 출신 자제들의 모임에 드나들었다. 이 모임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등장하는 파티와 마찬가지로 매우 향락적인 모임이었다. 또래들과 어울려 술과 여자로 밤을 지새우던 뒤마 피스는 한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그녀는 바로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던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였다.

무언가에게 홀린 듯 뒤마 피스는 뒤플레시의 집까지 몰래 뒤따라갔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갑작스럽게 각혈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결핵을 앓고 있던 뒤플레시는 뒤마 피스에게 극진한 간병을 받으며 그의 정성에 감동받아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둘은 일 년 남짓 신혼을 보낸다.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플레시는 여신처럼 추앙받으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코르티잔 출신이었으며, 그녀에겐 세련과 사치가 몸에 배어 있었다. 뒤마 피스 같은 젊은이로서는 그녀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적어도 그녀가 좋아하는 동백꽃에 파묻혀 지낼 수 있도록 해줄 재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뒤플레시는 다시 향락의 세계로 빠져들고, 이에 상처를 받은 뒤마 피스는 그녀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주는 사랑에 만족하는 가난뱅이도 아닙니다."

뒤마 피스와 헤어진 뒤플레시는 페레고 백작과 결혼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 결혼 역시 백작 집안의 반대로 파국을 맞이하고, 결국 그녀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건강만을 떠안고 파리로 돌아온다. 결국 오래지 않아 그녀는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뒤마 피스는 그녀를 평생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는 자기 내면에 소중히 간직한 뒤플레시와의 추억을 토대로 소설 '동백꽃 여인'을 쓰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낼 만한 나이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으니, 내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는 독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이야기에 뒤마 피스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대입하였다. 소설가 아버지와 재단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적인 핍박과 냉대에 시달린 자신의 트라우마, 뒤플레시에 대한 그리움, 당대의 문화상 등이 소설 '동백꽃 여인'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 속에서 뒤마 피스와 뒤플레시는 각각 아르망 뒤발과 마르그리트 고티에로 다시 태어나 현실 속의 뒤마 피스와 뒤플레시처럼 짧은 사랑과 비극을 맞이한다.

뒤마 피스는 임종을 맞이해서도 뒤플레시를 잊지 못한 채였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에서 그는 파리 북부에 위치한 빌레 코트레에 있는 가족 묘지 대신 뒤플레시가 묻혀 있는 몽마르트르에 묻히길 소망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제28화에서는 《 『라 트라비아타』 파격, 그리고 파격 》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경 뉴스인 논설위원은 바리톤 성악가로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오페라마 시각(始覺)’, ‘예술상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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