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미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몰디브 화폐 1000루피아 앞면에 쥐가오리(Manta rays)와 푸른바다거북(green turtle)이 보인다.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휴양지로 뜨는 나라 중 인도양 몰디브가 있다. 이 나라 화폐 루피야(Rufiyaa)의 최고액인 1000루피야(MVR) 앞면에는 쥐가오리 두 마리와 푸른바다거북, 그리고 뒷면에 고래상어의 그림이 있다.

1000루피야 뒷면의 고래상어

필자가 화폐 연구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한 나라의 화폐에 고래상어나 푸른바다거북, 쥐가오리 같은 신기한 바다 동물의 사진이 실렸다면 그 나라에서 스쿠버다이빙이 유명하고 휴양지라는 것이다. 필리핀, 벨리즈, 통가 화폐가 대표적인 사례다.

스쿠버다이빙하기에 좋은 나라인 몰디브에 갈 계획을 지난해 세운 뒤 올해 가려고 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새해를 맞아 머리가 복잡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비행기는 이브라힘 나시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막상 떠나기 전에 비행기는 벨레나 국제항공으로 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20루피야 앞면을 보면 바로 벨레나 국제공항이다. 그렇다면 이브라힘 나시르 국제공항은 어디서 나온 이름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아름다운 바닷가로 관심이 집중된 몰디브를 휴양지 대상이 아니라 역사 공부의 대상으로 살펴봐야 한다.

20루피아 앞면에는 이브라힘 나지르(Ibrahim Nasir) 국제공항, 그리고 참치를 잡아 걸어가는 어부가 있다. 어부의 발과 참치 사이에는 옛날 동전으로 사용된 자패(紫貝) 모습이 보인다.

몰디브는 1968년까지 술탄국이었다. 1968년 실시된 국민투표로 몰디브를 200년 동안 다스리고 있던 후라 가문이 정권을 잃고 공화국이 선포됐다. 몰디브 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는 입헌군주제 시절 국무총리를 맡았던 이브라힘 나시르가 선출됐다. 그러나 나시르 대통령은 독재정권에 있었던 데다 70년대 말 발생한 경제위기 때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임기가 끝나자 싱가포르로 자진 망명을 갔다.

나시르 대통령 다음으로 당선된 마우문 압둘 가윰도 전 대통령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2008년까지 정권을 잡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기간 통수권자가 됐던 가윰 대통령은 임기 중 인기가 떨어지자 쿠데타까지 발생했다. 급진 군사세력을 진압한 그는 싱가포르에 있는 나시르를 겨냥한 비리 수사를 지시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올리려고 했다.

2008년 당선된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은 가윰 전 대통령의 정책 지우기에 나섰고, 그중 하나는 말레 국제공항 이름을 이브라힘 나시르 국제공항으로 개명한 것이었다. 2011년 명칭이 바뀐 공항은 2017년 1월1일을 기준으로 한 차례 더 개칭을 거서 벨레나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됐다. 원인을 찾아본다면 2013년 말 당선된 야민 대통령은 가윰 전 대통령의 이복동생이기 때문일 것이다.

20루피야 뒷면의 전통 배 도니(Dhoni)

이 글에서는 몰디브의 이런 막장 정치 이야기를 떠나 경제구조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관광하기 좋은 섬나라 몰디브는 예전 아랍 기록들에서 ‘돈의 섬’으로 일컬어진다. 몰디브는 돈이 많이 나온 나라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지역에서는 동전으로 쓰이는 것이 은이 아니라 20루피야에 보이는 자패(紫貝)였다. 자패는 몰디브에서 많이 났다. 그래서인지 루피야 조폐공사 상징도 자패다. 오늘날에도 자패사업은 몰디브에서 흔한 일이다.

몰디브 경제에서 관광은 입문이다. 몰디브가 관광으로 뜬 것은 1970년 초다. 관광객을 위한 리조트가 1972년 처음 건설됐다. 당시 경제개혁으로 관광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해 오늘날 몰디브 경제의 3분의 1은 관광사업이 차지할 정도가 됐다.

몰디브 경제 구조를 이해하려면 방금 전에도 언급한 20루피야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20루피야 앞면에는 어부가 참치를 잡고 있으며, 뒷면에는 도니(Dhoni)라고 하는 전통 몰디브 배가 보인다. 예전에 오직 어업에 의존했던 몰디브 경제는 1970년 이후 관광산업 발달과 함께 조선업이 발전했다. 즉 몰디브 경제의 3기둥은 관광, 어업, 조선업이라고 할 수 있다.

몰디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 주제가 더 있다. 몰디브 관광객들이 신기해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몰디브에는 주류 물품을 가지고 입국할 수 없지만 호텔에서는 술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외국인들은 몰디브의 이런 정책이 술을 판매해 고가의 세금을 매겨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50루피야 앞면에 한 소년이 코란(Quran)을 암송하고 있다.

50루피야의 앞면을 보면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읽는 소년의 그림이 있다. 즉 몰디브는 국교가 이슬람이고, 자국민이 술을 마시는 것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사우디처럼 술이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관광업을 위해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술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디브 정부는 술 판매를 통제하기 위해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50루피야 뒷면의 '금요일모스크' 미나레트(Minaret of the Friday Mosque)

마지막으로 하나 더 추가하면 몰디브는 오직 휴양지 삼아 여행할 나라가 아니다. 몰디브에는 볼만한 역사 유적지도 충분히 있다.

대표적인 것이 50루피야 뒷면에 보이는 등대다. 수도 말레에 있는 이 등대는 사실 1658년 건설된 금요일 모스크(Friday Mosque)의 미나레트이기도 하다.

이 등대와 사원은 2008년 유네스코에 등재됐고, 세계 해양문화재의 귀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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