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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밝히는 남자, 알파고] 인도네시아 발리의 '독립투쟁' 영웅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 기자 | 승인 2016.12.21 15:44
알파고 시나씨 기자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미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5만 루피아 뒷면에 있는 발리의 힌두사원 '푸라 울룬 다누 브라탄(Pura Ulun Danu Bratan)'.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한국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는 무역하면 대박 날 나라일 뿐 아니라 휴가 때 가야 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유명 관광지인 ‘발리’라는 섬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보다도 더 많이 아는 것 같다.

발리의 특징은 바닷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이지만 여행할 만한 관광지도 많다. 발리 섬의 여행지 1위는 푸라 브라탄(Pura Bratan)이라는 사원이다. 이 사원은 인도네시아 대다수의 종교인 이슬람의 사원이 아니라 인구의 2%도 안 되는 힌두교 사원이다.

이 글을 보면서 혹시 “웬 힌두교 사원?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 아니야?”라고 반응할 지 모른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는 이슬람교이지만, 국교는 이슬람교가 아니다. 다민족 다종교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과 함께 개신교·천주교·힌두교·불교·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종교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사회통합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다종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화폐다. 인도네시아 화폐들을 보면 각 지폐마다 한 민족이나 종교에서의 영웅, 그 민족이나 종교로 유명한 지역이 소개돼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뒷면에 푸라 베사키(Pura Besakih) 힌두교 사원이 실려 있는 5만 루피아이다.

5만 루피아 앞면 인물인 아이 구스티 응우라 라이(I Gusti Ngurah Rai)

5만 루피아 뒷면에 발리 섬, 혹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장소가 실렸다면 앞면에도 이 지역 출신이거나 힌두교 신자인 영웅이 소개돼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5만 루피아 앞면에 소개된 인물은 발리 출신 영웅이다. ‘아이 구스티 응우라 라이’. 그렇다면 라이는 무슨 일을 했기에 인도네시아 화폐에 초상화가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는 그 시절로 가야 된다.

2차대전 때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아에서 세력이 약화되자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선포했다. 다만 잃어버린 식민지를 되찾으려 했던 네덜란드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한 때 일본이 만들어 놓은 조국보위군(Peta)은 이미 인도네시아합중국의 공식 군대로 전환됐지만, 해방의 자유를 맛본 지 얼마 안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또다시 싸우고 싶지 않았다.

1946년 네덜란드 군대가 다시 인도네시아를 침략했고, 수도인 자카르타가 있는 자와(Java) 섬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부 섬들을 쉽게 차지했다. 다시 네덜란드에 대한 인도네시아군의 저항이 시작됐고, 이때부터 인도네시아군과 네덜란드군을 비롯한 연합군 사이에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은 오직 외세와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부 이슬람 급진파는 새로 탄생한 국가가 지나치게 세속화되었다면서 인정하지 않았고, 자와 섬이 아닌 지역 사람들은 민족성이나 종교 정체성 때문에 수카르노가 이끌던 새 독립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위해 네덜란드군, 연합군과 싸우면서 동시에 외부의 지원을 받은 국내 반란도 진압해야 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한 명의 군인이 인도네시아에 군사적, 사회적으로 큰 공을 세웠다. 바로 아이 구스티 응우라 라이(I Gusti Ngurah Rai, 1917~1946)가 그 인물이다.

◇ 해방 위해 끝까지 싸운 힌두교 군인

1917년 발리에서 태어난 응우라 라이는 네덜란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네덜란드 군대에 입대한 힌두교 청년이었다. 그는 일본의 군정기가 시작하면서 조국보위국에 입대하고 장교로 복무했다. 일본이 철수하고 인도네시아가 해방 선언을 하자,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인도네시아 군대에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인도네시아 동부의 섬들을 점령하고 자와 섬으로 향한 네덜란드군은 먼저 발리 섬을 차지한 후 자와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군이 공격해오기 전 발리 섬에 온 응우라 라이는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독립 투쟁을 목표로 모인 민간 무장 세력이 서로 뜻을 달리하며 분열돼 있었고, 이에 지역 주민들 역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행히 응우라 라이의 지도력으로 간신히 단합하게 된 발리 사람들이 네덜란드군을 방비하고 있었다.

1946년 11월 발리 섬을 침략한 네덜란드군은 응우라 라이에게 대화를 제의했다. 이미 많은 인도네시아 지도자를 회유했던 네덜란드 측에서는 그의 민족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을 이용해 회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응우라 라이는 네덜란드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이 이끌던 군대에게 끝까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마르가라나 전투(War of Margarana)’에서 수많은 네덜란드 군인을 격퇴했지만, 불과 30세의 젊은 나이였던 라이 대령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오늘날 라이는 인도네시아에서 민족주의와 사회통합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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