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 기자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미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니카라과 1000코르도바 화폐 앞면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필자가 화폐 연구를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화폐의 디자인이다. 화폐에 어떤 디자인이 왜 들어갔는지를 궁금해 하면서 살펴보는데, 얼마 전에는 유엔 회원국을 기준으로 조사를 해봤다. 현재 유엔 회원국은 193개로, 이들 국가가 142가지 통화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유로(Euro)는 하나의 통화지만 23개국이 공식 통화로 쓰고 있다. 미국 달러만이 9개국에서 공식 통화이다.

화폐들에 가장 많이 쓰이는 디자인은 인물 초상화다. 하지만 142개 화폐 중 44개 화폐에는 인물 사진이 아예 없다. 대표적인 예는 방금 언급한 유로다. 5유로부터 500유로까지 각 화폐에는 시대별로 유럽의 건축 스타일이 그려져 있다. 또 다른 예는 브라질 헤알(real)이다. 모든 브라질 화폐에는 ‘공화국의 초상(Efígie da República)’이 있다. 가상 인물이라는 말이다.

브라질 화폐10헤알에는 '공화국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물론 덴마크 같은 일부 예외가 있지만, 사회를 통합시킬 인물을 선정하는 데 있어 합의가 어려운 나라들은 화폐에 초상화보다 건물, 경치, 상징적인 사물의 사진을 놓는 법이다. 화폐에 오직 상징적인 사물이나 건물만 실려 있는 44개 나라들의 지도를 만들어 살펴보면 신기한 현상이 보인다.

인물 없는 화폐를 사용하는 미주 국가는 극소수다. 북쪽부터 찾아보면 니카라과, 가이아나, 수리남, 트리니다드 토바고, 브라질. 이들 중 국제사회에서 그나마 이름이 들리는 나라는 니카라과와 브라질이다. 이번 글에서는 니카라과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니카라과 200코르도바 화폐 앞면에는 루벤 다리오 국립극장(Ruben Dario National Theater)이 있다.

니카라과 화폐들을 보면 10코르도바부터 1000코르도바까지 모두 건물이나 경치, 사물 그림로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코르도바는 특정한 인물과 관계가 완전히 없진 않다. 200 코르도바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화폐 앞면에는 하나의 극장이 보인다. 루벤 다리오 국립 극장.

극장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 루벤 다리오(Rubén Darío, 1867~1916)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인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페인어 문학에 있어 현대주의 개척자이자 현대 서정시의 최고 시인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스페인어 언어권 나라들의 시인들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문학 영웅이다.

다리오 시인은 고국인 니카라과를 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므로 200코르도바에 그의 기념물이 실려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0코르도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10코르도바의 앞면에 나와 있는 장소는 살바도르 아옌데 항구다. 살바도르 아옌데 항구는 니카라과의 수도인 마나과의 대표적 관광지로 유명하다. 부산의 해운대와 비슷한 위치다.

니카라과 10코르도바 앞면. 수도 마나과(Managua)의 푸에르토 살바도르 알렌데(Puerto Salvador Allende) 항구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항구의 이름을 준 살바도르 아옌데는 살바도르 아옌데 항구보다 더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 즉 칠레 대통령이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누구기에 다른 나라 항구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더 중요한 질문은 니카라과가 대체 어떤 정치적 과정을 거쳤기에 이웃도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 이름을 자기네 핵심적인 장소에 준 것인가?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구미계에서는 민주주의적인 절차로 국가 원수가 된 최조의 사회주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옌데의 신뢰를 얻어서 군대의 주도권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3년 뒤 그에게 쿠데타를 가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칠레는 거의 30년에 이르는 독재정권이 시작됐고 아옌데는 쿠데타 당시 자살했다. 이러한 계기로 아옌데는 세계적으로 진보계 정치 인사들에게 영웅이 된다. 그렇다면 니카라과는 아옌데와 어떤 정치적 인연이 있었을까?

한때 게릴라전을 벌이는 등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집권하고 있는 니카라과의 오늘날 모습을 이해하려면 100년 전으로 가야 한다. 19세기 중순 독립한 니카라과는 처음에는 민주주의 범위에서 주로 보수당이 집권해 왔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보수당과 미국의 친밀한 관계는 니카라과의 좌익 감정을 자극했고, 1893년 중도 좌익 정당인 민주당 출신 호세 젤라야(José Santos Zelaya)가 정권을 얻었다.

물론 보수당 시절 니카라과는 그렇게 민주주의적이지 않았지만, 젤라야 대통령 시절에도 민주주의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젤라야 대통령은 보수당과 다르게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반미 정책을 내세웠다. 이 결과 미국은 국내 우익 단체들에게 많은 지원을 했고, 정권이 1910년에는 민주당에서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1910년 이후 시작한 미국의 니카라과 간섭이 1912년에는 군사 작전까지 갔다. 보수당 정권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자국 이익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이 해병대를 니카라과에 주둔한 것이 니카라과의 오랜 내전을 가져오게 되는 잘못 낀 첫 단추가 됐다.

니카라과의 좌익 단체들은 1927년대부터 무장화를 하고 미국군과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 명이 거의 상징적인 영웅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아구스터 산디니스타다. 게릴라전 끝에 평화협상을 하면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주도하는 국민 수비군에게 납치당해 살해됐다. 이 사건으로 니카라과는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가족의 나라, 즉 소모사 가문의 왕국이 됐다. 이름만 공화국이지 1979년까지 소모사 가문 출신 정치인들이 니카라과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다면 1979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소모사 가문 독재 정권과 싸운 모든 좌익 무장 세력들이 1961년 하나로 통일했고, 이름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으로 개칭했다. 쿠바에서 게릴라 전 교육을 받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대원들은 소모사정권을 무너뜨렸다. 민주주의 절차가 실시된 구미계 나라들 중 가장 좌익 국가로 꼽히는 니카라과에서 아옌데 대통령이 큰 대우를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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