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부르키나파소 우달란 울씨의 모래언덕. (사진=이다영)

[뉴스인] 이다영 =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해·재난을 메일로 실시간 받아볼 수 있는 알림서비스가 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메일이 날아오는데 콜레라, 지카 바이러스 등 발생 사례는 물론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와 테러, 예정된 데모까지 알려준다.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에 머물 때 이 알림서비스를 확인하면서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한국에서 지내는 지금도 여전히 이 메일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부르키나파소 북쪽 말리, 니제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달란(Oudalan) 주에서 군인 세 명이 피살되는 사건이 올라왔다.

우달란 지역은 부르키나파소 최북단이고 사헬(Sahel)지역이라 거주민도 드물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내려오는 이슬람 무장단체도 간혹 있고, 피살되거나 인질로 잡히는 외국인들도 있다는 기사가 요즘 들어 이 지역 뉴스로 올라온다.

이런 지역에 겁도 없이 가는 외국인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뉴스가 올라오지 않았는데,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는 속담처럼 두려움과 공포심 하나 없이 그곳을 찾아갔다. 이 여행은 단순히 호기심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계획됐다. 다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여행지인 부르키나파소의 사헬을 소개하려 한다.

울씨 마을의 어린이들 (사진=이다영)

현장 파견 일정이 끝나갈 무렵, 문득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국가에 살면서도 사막을 한 번도 못 봤다는 생각이 날 사로잡았다. 부르키나파소에 사막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와가두구 한인들의 말로는 저 북쪽 사헬지역에 가면 드넓은 사막까진 아니어도 모래언덕이 있고 사막체험 코스도 있다고 한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부르키나파소에서 사막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동경하는 내게 사막이란 그저 환상이었다.

부르키나파소에 1년 가까이 사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평소 관계가 좋았던 현지 협력기관의 사무총장과 회의를 마치면서 시시콜콜 대화하던 중 한국에 돌아가기 전 사헬에 하루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도 현지인 사무총장은 외국인 동료에게 사헬 여행을 시켜준 경험이 있어 아주 흥미롭게 반응했다. 사헬지역을 달리려면 사륜구동 자동차가 필요한데 기관의 기사와 자동차를 하루 빌려 다녀오라는 조언까지 주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날 바로 기관의 자동차를 빌리고 기사에게 운전을 부탁하여 일주일 뒤 5명의 현지인 친구들과 함께 사헬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우선 와가두구에서 북동쪽으로 100km 달려 카야(Kaya)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한국 돈으로 1인분에 2000원 내외인 현지인 식당이었지만 그것마저 나에게 신세지기 미안한 친구들은 특별한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저렴한 소스밥을 선택했다. 우리 민족도 먹는 것이 여행이 되고 문화가 된 것이 얼마 오래지 않은 일이었음을 새삼 생각나게 했다.

배를 두둑하게 한 뒤 우리는 북동쪽으로 120km를 더 달려 도리(Dori)로 향했다. 5명의 현지인 친구들은 20-30대를 보내면서 이렇게 멀리 와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랬다. 그들과 나는 똑같은 이 시대 젊은 청년이지만 그나마 국내·외 여행을 계획할 자본과 여유가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내게도 이 친구들에게도 잊지 못할 여행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015년 2월 부르키나파소 세노(Seno) 도리(Dori)의 저녁 무렵 호숫가, 물 길러 온 여인과 당나귀가 보인다. (사진=이다영)

도리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는 도리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호수로 우리를 데리고 가줬다. 와가두구보다 훨씬 물이 적어 생수도 비싼 지역인데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호숫가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곳에 당나귀와 함께 물 길러 찾아온 주민들도 볼 수 있었고, 넓게 펼쳐진 땅과 하늘 사이로 사라지는 해도 바라보았다.

그 친구는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저렴한 숙소도 이곳저곳 소개해줬다. 2인실에 4000원짜리 방부터 2만 원짜리 에어컨 달린 1인실까지 다양했는데, 그날 저녁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축구 결승이 있는 중요한 날이라 휴게실에 TV가 있는 숙소로 정했다. 그날 결승에는 부르키나파소와 국경을 두고 있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경기를 했다.

부르키나파소에는 코트디부아르나 가나와 같은 혈통이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날 숙소에 모인 사람들도 응원하는 축구팀이 나뉘어버렸다. 이 민족의 축구 얘기라면 또 할 말이 많지만 여행 얘기로 돌아가겠다.

도리에서 피로를 잠시 풀고 다음날, 우리는 모래언덕을 보러가기 위해 비싼 생수를 사서 북쪽 우달란(Oudalan)으로 향했다. 포장도로는 거기까지였다. 사륜구동 자동차는 본격적으로 오프로드(Offroad) 위에서 모래바람을 날리며 부쩍 더 황폐한 땅을 달렸다.

2015년 2월 부르키나파소 우달란(Oudalan) 고롬고롬(Gorom-gorom)에서 마주친 목동. (사진=이다영)

농사가 불가능한 모래마을 고롬고롬(Gorom-gorom)은 유목민이 많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제일 큰 가축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고롬고롬에서 양과 소를 100여 마리씩 치는 목동에게 길을 물어물어 바퀴 자국만 있는 모랫길을 달렸고, 울씨(Oursi)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엔 어린이들이 모래언덕을 놀이터삼아 뛰어놀았고, 양을 치러 나간 남자들과 가시덤불 옆에서 절구를 찧으며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마을을 지나자마자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모래언덕이 있었다. 사막 초입이라 가시덤불과 나무도 꽤 있었지만, 고운 모래언덕은 우리 모두 동심이 되어 자유롭게 뛰놀도록 만들었다. 그날 우달란은 평화로웠고 하늘도 맑았다. 힘든 것은 목이 아주 금방 마르는 것뿐이었다.

2014년 2월 부르키나파소 우달란(Oudalan) 울씨(Oursi) 모래 언덕에서 텀블링하는 친구들. (사진=이다영)

모래언덕에 다녀온 이후, 메일의 재해 알림에 우달란 지역의 피살, 납치 사건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무서운 뉴스를 알기 전에 다녀온 여행이지만, 그 때도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뉴스에 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5명이나 되는 건장한 현지인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무사히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와 내 와가두구 친구들에게 그 날의 우달란은 여전히 무서운 곳이 아닌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난생 처음 관광객이 되어본 친구들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도,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도, 또 나의 머릿속 곳곳에도 사헬은 특별한 힐링으로 남아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