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화폐로 보는 세계사 속 숨은 이야기

*알파고 시나씨(Alpago Şinasi) 하베르코레(Haber Kore) 편집장이 세계 각국 화폐 속에 담긴 그림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뉴스인(NEWSIN)에 연재한다. 터키에서 태어난 알파고 기자는 지난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와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2016)가 있다. 지난 9월에는 대학로에서 '한국생활백서'로 스탠딩코메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편집자주

1990년 발행된 벨리즈 1달러(BZD) 앞면에 나와 있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

[뉴스인] 알파고 시나씨 기자 = 각국의 화폐를 살펴보면서 신기하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일부 나라들은 모든 종류의 화폐에 한 인물의 초상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유엔에 가입된 193개국 중 25개국에서는 화폐에 오직 한 명의 사진만을 담고 있다.

이 25개 나라는 각각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단 한 명만을 모든 화폐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일부 나라는 입헌군주제로 통치를 받았고, 일부는 군주가 없지만 모든 국민이 하나의 국부로 통일되기도 했고, 또 일부는 권위주의적인 배경 때문에 모든 화폐에 오직 한 명의 초상화를 넣었다. 25개국 중에 24개국이 아시아나 유럽,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고, 오직 한 나라가 미주에 있다. 바로 이 나라, 벨리즈(Belize)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1990년 발행된 벨리즈 1달러(BZD) 뒷면에는 벨라즈의 바닷속 모습이 그려져 있다.

멕시코부터 콜롬비아까지 중앙아메리카에는 8개 나라가 있다. 벨리즈 역시 나머지 미주 국가들처럼 예전에는 식민지였다가 독립했다. 신기하게도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스페인 식민지였는데, 벨리즈만 영국 식민지였다.

그렇다면 벨리즈의 통화인 벨리즈 달러에는 벨리즈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건국의 아버지 사진이 있는가? 땡~ 벨리즈 화폐들에는 식민지배를 받았던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가 있다.

벨리즈 100달러(BZD) 앞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영국에서 독립했던 나라들 중 호주, 뉴질랜드나 바하마 화폐들에도 엘리자베스 2세의 사진이 있지만, 모든 화폐 초상화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벨리즈는 마치 영국이나 된 것처럼 자기네 모든 화폐에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를 실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19세기 초로 가봐야 한다.

벨리즈도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1500년 이후 스페인 식민지이었다. 중앙아메리카 대륙 본토에 식민지가 하나도 없는 영국 입장에선 벨리즈 정도는 가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오랜 전투를 벌인 뒤 1862년 벨리즈를 정복한다. 거의 100년 동안 벨리즈의 국제적인 명칭이 영국계 온두라스였다.

영국의 잘못된 경제 정책들 때문에 발생한 어려운 상황은 벨리즈에서 좌익 흐름을 일으켰다. 이 진보좌익적인 흐름은 2차 대전 이후부터 전 세계적으로 강하게 분 민족주의 바람과 합세했고 벨리즈에서도 독립을 바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벨리즈 사람들은 1962년 자치권을 얻었고, 1973년에는 국호를 영국계 온두라스에서 벨리즈로 바꿨다. 1981년 유엔 총회에서 다수결에 따라 독립국이 됐다.

벨리즈 100달러(BZD) 뒷면에는 벨라즈에 서식하는 새들의 그림이 담겼다.

벨리즈는 자신들의 독립 문제를 국제화시킨 뒤 겨우 영국에서 독립을 했는데, 왜 독립 이후에도 영국 군주 사진을 모든 화폐에 실은 것일까? 벨리즈는 독립으로 가는 길에 새로운 문제와 대면하게 됐다. 바로 과테말라의 위협이다.

과테말라는 벨리즈가 독립할 움직임을 보이자 벨리즈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과테말라의 이 주장은 유엔에서 거론됐는데, 처음에는 외교 문제로 발생한 과테말라의 벨리즈 영토 주장이 독립 이후 군사 충돌로 이어지다가 벨리즈 정부가 국방을 영국에게 맡기면서 마무리가 됐다.

벨리즈 2달러(BZD) 앞면에 나와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과 기념 석비

벨리즈 화폐를 가지고 오직 독립 과정만 이야기하기에는 아까워서 몇 가지 여행 팁도 알려둔다. 벨리즈의 가장 작은 화폐는 2달러이다. 2달러 앞면에 보이는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 옆에는 기념 석비가 보인다.

그 기념 석비는 벨리즈 땅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존재했던 마야 문명의 님 리 푸니트(Nim Li Punit)라는 유적지에서 찍힌 것이다. 님 리 푸니트는 벨리즈의 남쪽에 위치한 털리도 구에 있다.

벨리즈 2달러(BZD) 뒷면에는 후난투니트의 마야 유적지(Altun Ha Temple)가 담겨 있다.

2달러를 뒤집어 보면 마야 스타일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그 피라미드는 후난투니트(Xunantunich)라는 유적지에 있다. 후난투니트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경복궁 같은 곳이다. 즉, 벨리즈의 관광지 1위로 꼽히는 장소라는 얘기다. 후난투니트는 벨리즈 동부에 있는 카요 구에 위치한다.

벨리지가 2달러를 통해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비록 30만 명의 작은 나라지만, 마야 문명의 수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멕시코 남부부터 온두라스까지 지역에 존재했던 마야 제국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지만, 그 문명의 유적지들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 남아 있다.

다만, 웬만한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이 유적지들로 활발한 관광사업을 벌이다보니, 대부분의 마야 유적지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반면 벨리즈는 마야 문명 관광지로 아직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편이어서 그곳에 가면 그 당시 분위기를 그나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벨리즈의 동남부 지역에 마야 유적지가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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