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Norma)'

*클래식 예술의 한 장르인 오페라(opera)를 널리 알리고 이해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바리톤 성악가 정경의 교육 칼럼 [오페라와 춤추다]를 뉴스인에 연재합니다. 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는 예술에 관심이 높은 사회인과 학생들에게 예술 상식과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오페라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1829년 12월 26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 ‘노르마’는 벨리니의 오페라 중 최고작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이탈리아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그린 이 작품은 ‘연인 사이의 애정이 강렬할수록 그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도 커진다’, ‘사랑은 배신으로 되돌아오며 그 배신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벨리니는 자신이 그간 발표한 전작들을 훌쩍 뛰어넘는 역량을 대중에 내보이게 된다. ‘노르마’ 발표 이전에도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깊이가 부족한 아름다운 멜로디의 연속일 뿐이라는 평가도 존재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반면 ‘노르마’는 탄탄한 스토리와 음악이 결합되고 합창, 무용 등의 요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된, 비로소 무대종합예술이라 불릴 만한 걸작이었다. 벨리니는 이 작품을 통해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오페라 ‘노르마’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침략을 받는 갈리아 지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이다. 구성은 전반의 제1막, 그리고 후반의 제2막으로 나뉜다.

◇ 제1막

갈리아 사람들이 신봉하는 종교의 일파인 드루이드가 등장하는 것으로 제1막이 시작된다. 드루이드들은 갈리아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래 줄곧 로마군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러한 지배 체제가 못마땅했던 드루이드들은 반로마적인 성향을 띈 채 호시탐탐 로마로부터 자유를 얻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드루이드족의 승려와 병사들은 지도자인 오로베소를 따르고 있었는데 그는 늘 로마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키자며 백성을 설득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뜻을 따르는 젊은이들은 로마의 멸망을 기원하기 위해 산속에 있는 성지에 모여 달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모반 계획의 실행은 청동으로 만든 방패를 크게 세 번 울리는 것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오로베소의 딸이자 드루이드의 여제사장인 노르마였다. 그녀가 방패를 두들기면 집결한 드루이드들이 일제히 일어나 로마에 대한 항거 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로마에서 파견한 갈리아 총독 폴리오네는 동료인 프라비오 대장에게 자신과 노르마 사이에 두 아들이 있으며 지금은 노르마를 섬기는 아달지자라는 여인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는 아달지자를 로마로 데려갈 생각이라고 밝히지만 친구인 프라비오는 노르마가 복수할 것을 염려해 이를 만류한다. 

드루이드족 승려와 병사들이 모인 자리에 노르마가 등장해 의식을 선언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인 오로베소의 의견과는 달리 로마인에 대한 공격이 아직 시기상조라고 발언한다. 그녀는 로마 제국은 자신들이 쌓은 업보와 과오로 인해 무너지리라는 예언을 언급하며 성난 민심을 달랜다.

이때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이다. 이 곡은 드루이드 족이 섬기는 신을 기리는 내용으로 곧바로 다음 아리아인 ‘아, 돌아오라 내 첫사랑이여(Ah! bello a me ritorna)’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중간자적이면서도 책임을 져야만 하는 노르마의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의식이 끝난 제단에 아달지자가 나타난다. 그녀 또한 사랑과 공포에 번민하고 있던 것이다. 때마침 그녀를 연모하는 갈리아 총독 폴리오네가 등장하여 로마에 가서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면서 아달지자를 회유하는데, 이에 감복한 아달지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따르겠다며 굳게 맹세한다.

노르마는 자신과 폴리오네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을 몰래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폴리오네가 로마로 소환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자신과 두 아이가 버림받을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폴리오네가 또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이때 아달지자가 자신의 번민을 호소하기 위해 노르마를 방문한다. 아달지자는 자신이 신앙을 버리고 사랑을 구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노르마와 함께 2중창인 ‘종종 저는 신전에서(Sola, furtiva, al tempio)’를 부른다. 노르마는 아달지자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다. 자신 또한 같은 죄를 범한 바 있기에 아달지자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것이었다.

만남의 막바지에 노르마는 아달지자에게 그 사랑의 상대가 누구인지 묻고, 아달지자는 한 남자를 가리킨다. 이에 노르마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바로 폴리오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전에 아리아 ‘아, 네가 이런 끔찍한 제물이 되다니(Oh! di qual sei tu vittima)’가 흘러나오는데 노르마, 아달지자와 폴리오네 셋이서 부르는 삼중창은 이들의 삼각관계와 그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렀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노르마는 폴리오네에게 배신자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사라져 버리라고 저주한다.

◇ 제2막

2막이 오르자마자 절망한 노르마는 잠든 아이들을 죽이려 마음먹지만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녀는 겨우 분노를 견디어내며 아달지자를 소환하고, 죽음을 각오한 노르마는 아달지자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폴리오네에게 데려가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아달지자는 이를 거절하는 동시에 자신이 폴리오네를 향해 품었던 마음을 포기할 것을 약속하면서 폴리오네가 다시 회개하여 노르마 곁으로 올 것이라 위로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중창이 바로 유명한 ‘바라봐요, 노르마여(Mi chiami, o Norma!)’이다.

한편 드루이드 진영에서는 군장들이 모여 로마군의 동정에 대해 의논을 개시한다. 오로베소는 폴리오네가 곧 냉혹한 총독과 교대되리라는 것을 설명하며 적절한 시기가 올 때까지 평화로움을 유지하다가 일거에 적을 타도할 것을 주장한다.

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총독 폴리오네는 아달지자를 쉽게 단념하지 않았고, 아달지자는 이 사실을 노르마에게 전달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폴리오네의 행각에 분노한 노르마는 결국 방패를 크게 세 번 두드리고, 그 결과 드루이드 전 부족에게 로마와의 전쟁 개시 신호가 하달된다.

이때 한 시녀가 달려와 로마군이 잠입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바로 폴리오네였다. 붙잡힌 폴리오네는 곧바로 포로 신세가 되었고 총독이라는 그의 지위는 드루이드들에게 있어 전쟁의 시작을 축복하는 더없는 길조였다. 오로베소는 검을 뽑아 제단 앞에 끌려 나온 폴리오네를 향하는데, 노르마는 아버지를 가로막고 자신이 대신 폴리오네를 죽이겠다며 단도를 뽑아든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미련 때문인지 노르마는 폴리오네를 찌르지 못하고, 대신 폴리오네를 이곳에 끌어들인 반역자가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해 심문해야 한다고 모두를 설득한다. 다른 이들은 반역자를 색출하기 위해 퇴장하고, 무대 위에는 노르마와 폴리오네 단 둘만 남게 된다.

노르마는 폴리오네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며 아달지자를 버리고 자신과 아이들에게로 돌아올 것을 권한다. 그러나 폴리오네는 단호히 거절한다. 분노한 노르마는 아달지자를 사형시키겠다며 협박하고 폴리오네는 제발 아달지자를 살려달라며 애원한다. 이에 노르마는 더욱 큰 비참함을 느낀다.

이윽고 노르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신성함을 모독한 한 여승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군중들이 배신자가 누군지 궁금해 하고 폴리오네는 안절부절 아달지자가 아니길 빌 뿐이었다. 노르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답을 내어 놓는다. 배신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 것이다. 노르마의 발언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며, 특히 폴리오네는 큰 충격을 받는다.

노르마는 아버지인 오로베소를 향해 아리아 ‘저 때문에 아이들을 희생시키진 마세요(Deh! non voleri vittime…)’를 부르며 마지막 소원을 전하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오로베소는 눈물을 감추며 죽어가는 딸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러한 노르마의 선택에 깊은 감명과 충격을 받은 폴리오네는 노르마와 함께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한 뒤, 노르마가 앞서 간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는 그 막을 내린다.


이어지는 제 11 화에서는 《오페라 『노르마』, 막장드라마 혹은 숭고한 사랑 이야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경 뉴스인 논설위원은 바리톤 성악가로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오페라마 시각(始覺)’, ‘예술상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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