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호 논설위원/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러시아연방 변호사

[뉴스인] 차윤호 논설위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걸음이 무척 빨라지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 5월에 소치에서,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고, 다음달 11월에는 페루에서 만날 예정이며, 12월 15일에는 아베 총리 고향인 일본 야마구치에서 러·일정상 회담이 잡혀있다. 이 함의는 결국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경제협력 주요 파트너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될 확률이 높다.  

이제 남북한 철도보다 도쿄발 철도가 시베리아 철도와 먼저 연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 간 평화협정 체결 및 대규모 메카톤급 경제협력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우리가 추진해왔던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연결로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가 되어 우뚝 서겠다는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일본 산케이신문과 러시아 언론매체에 따르면, “일본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 TSR을 사할린 섬을 통해 일본 홋카이도로 연결하는 사업, 카잔과 블라디보스토크 구간 철도 현대화 사업, 에너지 망 연결 사업 등을 12월 러·일 정상회담 의제로 적극 검토 중이다”라고 전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철도 연결 구상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08년 12월 제2차 유라시아 국립철도대학 국제심포지엄에서 러시아 교통부 산하 연방철도 정책실 페트라코프 실장은 러시아연방 교통부가 확정한 1, 2차 철도투자 계획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는 1차 사업으로 사할린과 러시아 본토까지 7km를 교량으로 연결하고, 2차는 늦어도 2030년까지 사할린과 일본 홋카이도 구간 42km를 해저터널이나 다리로 연결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2011년 12월 푸틴이 총리시절 기자회견에서 상기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언급했고 공사비도 7년에 걸쳐 120억~150억 달러(13조~16조 원) 정도로 추정한다고 했다.

경제성은 몰라도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제안이다. 모스크바 출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 TSR 길이는 9288km이고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러시아 본토로부터 사할린까지 해상으로 7km이고, 사할린에서 홋카이도까지 약 42km구간이다. 이렇게 된다면 동북아 물류중심 국가의 지위는 일본이 먼저 선점하게 된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동시베리아 및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토안보 차원에서의 극동지역 개발과 시베리아의 무한한 에너지 자원 동북아 수출시장 확보를 위해 러시아는 수 년 간 한국과 일본에 TSR 연결사업, 가스관 연결사업 그리고 전력망연계 사업(에너지 브리지)을 연계해 메가톤급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한국은 남북관계 등을 핑계로 한·러 경제협력을 미지근하게 차일피일 미루어왔고 남북통일과 통일한국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두만강 하류지역의 남·북·러 대형 경제협력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차려준 밥상에 수저도 못 들고 뜸만 들이고 있다.

일본 역시 러시아와의 전면적 경제협력에는 큰 장해물이 존재한다. 이것은 북방 4개 섬(러시아명 쿠릴열도)이다. 북방 4개 섬(하보마이, 시코탄, 쿠나시르, 에토로후 섬) 영토 반환에 대한 문제는 60년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원래 이 지역은 일본령에 속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패망으로 러시아로 넘어갔다.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 후 소련과 일본은 전쟁종식, 포로교환, 민간인 송환 및 양국 간 대사관 설치가 이루어졌고, 1956년 10월에 ‘소련·일본 공동선언문협정서’가 체결되었다. 내용을 보면, “양국은 외교관계 수립 후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소련은 북방 4개 섬 중 하보마이와 시코탄 섬 2개를 일본에게 양도하는데 동의”한다. 양국이 국회 비준을 마친 상태에서 1960년 일본은 미국과 안보협정을 맺었고,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 소련은 일·소 공동선언문협정서를 파기했으며, 단 2개 섬 반환은 평화협정 체결과 일본에서 외국군대 철수 후 반환키로 했다. 양국은 지금까지 영토분쟁 등으로 대규모 투자나 경제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양국이 영토문제에 대해 완전히 해결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크고 높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절박함과 문제해결 의지가 강해 양국 간에 이해관계가 좁혀져 엉킨 실타래가 12월에 한꺼번에 해결될 가능성도 크다.

그 배경으로, 러시아 경제는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와 국제유가의 장기간 폭락으로 궁지에 몰려있다. 러시아는 TSR을 일본과 연결함으로써 동시베리아 에너지 수출 판로가 개척되고 극동개발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를 동북아의 물류중심지로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정부도 러시아와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방 4개 섬 중 2개(하보마이, 시코탄)를 우선적으로 러시아로부터 반환받고 나머지 2개 섬을 장기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동아시아로 팽창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러·일 경제협력을 통해 수출증대와 함께 러시아로부터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한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올해 들어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만난 두 정상은 공식 정상간 회의에서 친구처럼 농담조로 말을 낮추는 등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성공적인 러·일 경제협력을 이끌기 위해 아베 총리는 최측근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내각관방 부장관을 경제산업상으로 내정해 일·러 경제협력 주무 장관으로 임명했다. 일본은 러시아와 영토문제 해결과 메가톤급 경제협력을 위해 6000억 엔(6조5000억 원) 이상의 경협 자금을 러시아와 협의 중이다.

상기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면 북한에 가로막힌 한국의 물류고립,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의 경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러시아의 경제협력 손짓에 우리의 대응은 한마디로 미지근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대러시아 경제협력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를 바라볼 때 미국의 시각만이 아니라 북·중·러 시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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