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먼 시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길거리 잔해 (사진=이다영)

[뉴스인] 이다영 = 10월의 부르키나파소는 무료했다. 덥기로는 45~50도를 오가는 4월 다음으로 가장 더운 때가 10월이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뙤약볕 아래 모래먼지 바람이 시작되는 때가 10월이다. 그나마 4월에는 달콤한 망고라도 풍년이라서 종류별로 망고라도 먹고 있으면 어느새 우기가 찾아오는데 10월은 망고 한 알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도 상반기에 대부분 마무리가 되어 서류정리로 시간을 보내던 그 무렵,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일이 찾아왔다. 2014년 10월 28~29일, 대통령의 27년 장기집권에 이어 대통령 연임 허가를 위한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민 항쟁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헌법 개정 반대, 그리고 물가가 너무 높아 못살겠다는 목소리를 내려는 봉기였다.

◇ 시민 항쟁으로 일어난 대통령 하야 사건

당시 집권하던 블레즈 콩파오레 대통령은 5년 단임제를 연임제로, 이를 7년 연임제로 거대 여당과 함께 여러 차례 법을 바꿔가며 27년을 채우고 있었다. 올해는 이 법을 또 바꾸어 한 번 더 집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 투표가 있는 해였다.

장기집권자 아래 비교적 안정적으로 천천히 성장하던 부르키나파소였지만 그래도 끝없는 가난과 고위층의 공금횡령 등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생기다보니 ‘이제는 지쳤다’, ‘새로운 삶을 원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비단 부르키나파소만의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혹은 이외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모습이다.

10월 28일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될 이 법안통과를 막기 위해 10월 초부터 민중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고 있었다. 현지인 친구들 휴대폰에는 10월 28일부터 있을 데모 현장에 참여하라는 메시지가 오기도 하고, 대학교에서는 직접 그 현장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는 무리도 생겨났다. 이 모든 건 비밀스럽게 그렇지만 공공연하게 진행되었다.

10월 마지막 주가 되자 사무실에선 현지인 동료들이 나에게 찾아와 28일부터는 당분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출근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날 퇴근 후 해가 지자, 먼 데서부터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도로를 폐쇄하려고 먼 곳에서부터 타이어를 태운 검은 재가 내 방을 뒤엎고 시내 한 가운데까지 이어졌다.

타이어 연기로 가득 찬 길거리 모습 (사진=이다영)

다음날 아침, 나는 해가 뜨는 오전 6시부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도로는 온통 호루라기를 불고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내로 향하는 청년들로 가득 찼고, 우리 집 문 밖에서는 한 현지인 친구가 시위 나가는데 모든 장면을 담아올 것이니 휴대용 카메라를 빌려달라는 노크소리가 나를 깨웠다.

그렇게 현지인 친구들은 신변상의 이유로 집에 있어야만 하는 외국인 신분의 나에게 건투를 빌어달라며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날의 뒷이야기, 그 친구는 카메라를 잃어버린 채 돌아왔다.

모든 집엔 노인과 여자, 어린이만 남아 묵묵히 하루를 지켰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밥은 먹었느냐며, 무섭지는 않으냐며 건너오라고 하셨고, 그 집에서 나는 저 멀리 들리는 총성과 포탄소리를 듣고 하늘로 치솟는 연기를 보며 내 친구들과 동료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TV를 주시하던 어느 순간 전파가 끊겼다. 방송국이 점령당했나보다. 그리고 라디오를 주시하던 중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들이 모두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게 세상에 가능한 일이던가. 시민들은 시내 광장이나 국회의사당, 대통령 일가친척의 사택이나 사업장 같은 곳에 몰렸다가 최종적으로 대통령궁으로 몰려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항쟁을 위해 시내 광장에 모인 시민들 (사진=www.ouaga.com)

대통령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이웃 국가로 망명을 떠났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큰 의미가 있었다. 27년 집권했던 콩파오레 대통령 하야 공식 선언이 이루어지던 그 순간 시내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함성소리. 8·15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기쁨이 이러했을까 벅찬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

◇ 곳곳에 벌어진 놀라운 풍경

아침 일찍부터 시내를 향하던 데모 행렬은 오후가 되자 시내 반대방향으로 바뀌었다. 놀랍고도 이상한 점은 더 이상 단결은 없고 온갖 가구와 건축자재, 식품 등을 양손에 가득 들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좀도둑이 꽤 많이 숨어있었다. 국회의사당, 핵심인물의 사택과 공장, 큰 마트를 모두 털다 못해 문짝과 전기선까지 뜯어 집으로 가져가는 이들을 보며 가난과 분노, 군중심리, 민중의식과 이기심 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해가 지면 통금이 시작되었다. 다른 데모 조직과 이 틈을 타는 좀도둑의 활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이 큰 도로변이라 통금이 시작되면 친구들과 옥상으로 올라가 무모한 좀도둑을 잡는 군경들을 살펴보곤 했다. 대통령 하야 소식이 전해졌던 그날 밤엔 그 옥상에서 남모르게 축배를 나누기도 했다.

그 10월의 항쟁으로 인해 며칠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나를 위해, 며칠 뒤 현지인 친구는 오토바이 시내 투어를 시켜줬다. 시민들의 주요 집결장소, 불타버린 국회의사당의 잔해, 관광지가 되어버린 대통령 친인척 저택, 모두 검게 타버린 길바닥. 부정의한 장기집권 아래 가난을 참지 못해 터져버린 시민들의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그 잔해들은 전해주고 있었다.

(사진=르몽드)

◇ 그들을 통해 반추해 본 우리 사회

정계의 급진주의자들로부터 시작되었던 이 움직임에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이 동요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항상 정치에 불만과 삶의 애환을 품고 사는 것은 어느 나라 젊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큰 소리 한번 치고 말겠지 싶은 생각이 컸나보다.

그들에게 발전의 경험은 간접적인 체험조차 없으며, 민주적인 참정권 같은 것도 없다. 보고 배운 선례도 없이 삶에서 우러나온 처절한 몸부림으로부터 그들은 본능적으로 역사를 이루어냈다. 그것이 정의로운 인간의 모습이었거니와, 나는 그저 불만만 쏟아놓고 힘이 없는 우리 한국인 중 하나였음을 철저하게 깨달았다.

그들의 삶은 지금 더 어렵다고도 한다. 장기집권 아래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경제가 더 휘청거리고, 그 이후 정권을 탐하는 자들의 쿠데타도 일어나고 국제사회 교류도 불안해졌다. 이런 연유를 아는 이들이든 모르는 이들이든 그렇다고 그 날의 사건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남 탓을 하는 사람도 없다.

그 민족은 자신들의 선택 뒤에 따라오는 고통 역시 감내하며 그 어느 민주 선진국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민주사회 속에서 경제까지도 발전이 일어나길 소망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삶과 사람, 사회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생활수준, 경제 수준과는 비례하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옳고 그름을 정확히 얘기하고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권리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일반상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만 작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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