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집 앞에 둘러앉아 젬베를 치고 노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르키나파소 친구들. (사진=이다영)

[뉴스인] 이다영 = 열대야로 푹푹 찌는 한여름 밤, 서울 한강변엔 삼삼오오 사람들이 둘러앉아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심야영화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기도 한다. 나는 이런 활기찬 여름밤의 분위기가 좋다. 더운 밤에 잠 못 이루는 우리네 인류는 이렇듯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낸다.

더운 밤의 문화는 부르키나파소에 머물 때도 날 들뜨게 했다. 이 나라는 일 년 내내 저녁 6시만 되면 해가 진다. 어두운 저녁이 일찌감치 찾아오는 이 나라에서 전기 하나 없는 시골 지역은 일찍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것이 365일의 일상이겠지만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 와가두구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오토바이 인파와 소음, 매연을 뚫고 집에 다다르면, 더위를 피해서 혹은 옆집 PC방의 와이파이를 빌려 쓴다는 핑계로 집 앞에 의자를 늘어놓고 하염없이 앉아있는 현지인 친구들이 퇴근하는 나를 맞아주었다.

건기가 시작되면 정전과 단수, 찜통 같은 집안을 핑계로 그들은 이렇게 집 앞 길거리에 더 모여든다. 또 유럽 축구가 시작되는 시즌에는 축구를 핑계로 길거리 음식점 ‘마끼(Maquis)’에 모여든다.

그리고 금요일과 토요일엔 주말을 핑계로 ‘나이트클럽(Boite de nuit)’에도 몰려든다. 춤을 좋아하는 그들은 시끄러운 음악 아래 맥주와 음식, 수다 속에 흠뻑 젖는다. 이렇게 그 나라의 젊은이들은 덥고 긴긴 밤을 항상 즐기고 있다.

마끼(Maquis)에서 생선을 구워 판매하는 모습(왼쪽)과 댄싱 마끼.

유독 인상 깊었던 장소는 ‘마끼’다. 언뜻 보면 유럽의 테라스 문화 같고 또 어찌 보면 여름날 한강변 공터의 배달문화 같기도 했다. 건물을 임대하여 정식으로 레스토랑 허가를 받지 않고 길거리에서 간이 요식업을 하는 사업장을 뜻한다.

길가에 조그마한 공터라도 있다면 마끼가 들어서는데, 리어카 크기의 간단한 조리 시설을 설치하고 대충 만든 철제 테이블과 의자, 플라스틱 간이 의자까지 동원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자리를 확보한다.

맛집은 정해져있지만 메뉴는 다 비슷하다. 가장 흔한 것은 닭구이와 생선 구이, 양고기 구이다. 아주 질기고 살코기도 적은 토종닭이지만 소금양념 된 직화구이는 특별한 날에 먹는 별미다. 무슬림과 크리스천이 섞여 사는 그들 문화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양고기도 비슷하게 직화구이 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는데 불에 오래 구워 새까맣고 질기지만 비린내 나지 않는 일품요리다.

코트디부아르 음식인 아체께 생선요리(attieke poisson)

생선요리는 내륙국인 부르키나파소에서 민물생선이 그나마 귀한 식재료이다. 바로 이웃국가인 코트디부아르에서 들어온 대표적인 음식이 ‘아체께 생선요리(Attiéké poisson)’인데, 생선에 아체께와 야채를 곁들여 먹는다.

눈알이 떡하니 보이는 커다란 민물고기에 카사바라니. 낯설기만 한 음식엔 포크는커녕 꼬챙이도 없다. 손으로 발라 먹는 이 모든 것이 처음엔 괴롭기만 했는데, 살다보니 아체께는 손으로 뭉쳐 생선과 함께 먹는 게 가장 맛있고 어느새 이 아체께 생선요리가 나에겐 최고의 현지음식이 되었다.

그밖에도 밥, 스파게티, 샐러드, 오므라이스, 감자튀김(부르키나파소 감자튀김은 단연 최고다), 토마토소스, 땅콩소스, 아체께, 아리꼬, 삶은 콩 등 다양하게 요리해서 원하는 대로 가져온 그릇이나 봉지에다가 담아주기도 하는데, 1인분에 1000원이면 충분하다.

모든 요리에 빠질 수 없는 건 ‘피망(piment)’이라고 불리는 매콤한 양념가루 혹은 양념소스이다. 간이 맞지 않을 때, 매콤한 게 당길 때 어느 음식점에서든 피망 좀 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내오듯 곁들여 먹을 수 있다.

마끼에는 나름의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이 있다. 음료 판매상과 음식 판매상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테이블을 공유하고 한쪽에서는 음료 창고에 갖가지 현지 병맥주, 콜라, 사이다, 토닉워터, 말타(보리음료) 등을 시원하게 갖춰놓고, 또 바로 옆에는 음식 판매자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기 때문에 오토바이 주차를 담당하는 이가 한쪽 에서 주차료를 100원씩 받아간다. 엄청난 경제활동이 벌어지는 길거리를 그들은 이렇게 공유한다.

매연 가득한 도로변 마끼, 딱딱한 간이 의자에 앉아있노라면 주문을 받으러 오는데 처음 주문은 무조건 음료다. 음식 주문은 입으로 ‘씁~’하는 바람 소리를 내서 사람을 따로 부르거나 직접 주문하러 매대에 간다.

음식이 거의 조리될 쯤엔 음식집에서 일하는 아이가 손 씻을 물주전자와 물비누를 들고 온다. 비누를 손에 바르고 아이가 따라주는 물주전자에 손을 대고 손을 씻으면 곧 푸짐한 고기 요리가 나온다는 신호다.

음식을 먹다보면 으레 이 장소를 공유하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난다. 양손에 휴대용 티슈, 액세서리, 의류, 중국제 핸드폰, 그림엽서 등 온갖 물건을 가득 들고 식사중인 이들을 호객하는 행상인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하나같이 빨간 케첩 깡통에 돈이나 먹을 것 달라고 잘 훈련 받은 앵벌이 아이들도 매일 마주치는 인물들이다.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더하다.

행상인들과 구걸하는 아이들을 이제는 지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나와 함께 식사하러 온 친구들이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외국인 친구 피곤하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며 아이들에게 100원을 쥐어 보낸다. 근근이 먹고 사는 이 친구에게 난 또 신세를 졌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향한 정의로운 마음으로 먼 이국까지 날아가 앵벌이 보스에게 돈을 보내야 하는지, 또는 사봤자 쓸모없는 행상 물건을 사줘야 하는지 반복되는 고민을 하는 중 이렇게 또 내 친구의 주머니를 열게 만들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그곳. 그들이 어떻게 함께 먹고 사는지 하나하나 만날 수 있는 그곳. 밥을 사주려다 도리어 고마움과 미안함과 근심을 얻고 밤에 생각이 깊어지는 그곳. 그래서 내가 그 마끼를, 그 밤들을 이토록 잊지 못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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