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에티오피아에서는 신부 집에서 신부가족의 사진촬영이 이뤄진다. (사진=박수정)

[뉴스인] 박수정 =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기고 나니 가만있어도 주변에서 안부 인사처럼 연애는 하고 있는지 결혼은 왜 안 하는지 질문을 받게 된다. 마음먹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결혼이라면 이미 5번은 하고도 남지 않았겠느냐며 우스갯소리로 답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결혼과 결혼식이란 것에 아름다운 꿈을 꿨던 소녀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그 나라 결혼식을 한 번씩은 구경하고 싶어 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마침 운이 좋게도 현지인 친구의 친척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내 친구는 신부의 들러리(Bridesmaid) 중 하나로, 덤으로 나는 외국인이라는 특혜로 ‘프로토콜(Protocol)’ 역할을 맡았다. 프로토콜은 신부와 가장 가깝게 붙어 신부의 화장도 고쳐주고 드레스도 만져주는 등 결혼식 내내 전반적인 신부 케어를 담당한다. “그 정도쯤이야!” 생각하고 에티오피아 결혼식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흔쾌히 초대에 응했다.

내가 지난 몇 년 간 다녀온 한국의 결혼식은 결혼식장을 대관해 길어야 1시간 안에 예식을 마치고 하객들 끼리끼리 앉아 뷔페음식을 먹고 헤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친한 미국인 친구가 한번은 우리나라 결혼식을 경험하고선 ‘결혼식 공장(Wedding factory)’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던 것에 수긍할 정도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결혼식은 한국의 결혼식과는 많이 달랐다. 새벽 아침부터 신부 측 일가친척 가족들이 모두 신부 집으로 모여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든다. 미리 모인 가족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챙기느라 바쁘고 덕분에 아프리카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는 오전 내내 끊이질 않는다.

예쁘게 꾸며진 신부의 집에서 신부 들러리와 프로토콜의 사진촬영이 이뤄진다. (사진=박수정)

신부는 예쁘게 꾸며진 거실 한 가운데 앉아 있고 신부 들러리들, 가족, 친척들과 사진 촬영을 하며 신랑이 오기를 기다린다. 몇 시간이 지나고 신랑과 신랑의 가족 및 친구들이 떼로 몰려 왔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신랑이 쉽사리 신부의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부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이 신랑을 막는다. 마치 우리나라 결혼관습 중 함이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들이대고 실랑이를 벌인다.

겨우 고생 끝에 신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와 신부를 만나게 되면 다시 한 번 예의를 갖춰 프러포즈를 하고 신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다. 집 밖으로 나오면 집안 모든 어르신들이 바깥에 일렬로 앉아 있는데, 신랑 신부는 집을 떠나기 전 덕담을 듣고 손등과 볼에 키스를 나눈 후 떠나야 한다.

웨딩카를 타고 떠나는 신랑 신부를 위해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나와 모두가 크게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준다. (사진=박수정)

준비된 웨딩카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신랑신부 차를 선두로 모든 가족들이 차를 함께 타고 이동하는데, 마치 퍼레이드를 하듯이 이동하는 내내 노래를 부르고 경적을 울려댄다. 매주 주말이면 아디스아바바의 도로는 이렇게 결혼 행진하는 차들로 시끌벅적하다. 신나게 이동해 도착한 곳은 나무들이 울창한 넓은 공원이었다. 그 곳에서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랑 신부의 사진 촬영을 돕는다.

오후 2~3시가 돼서야 진짜 결혼식장에 드디어 도착한다. 결혼식장은 이미 하객들로 가득 차있다.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나는 에티오피아 음악이 울려 퍼지면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신랑 신부가 멋지게 입장한다. 뒤따라 신랑 신부 들러리들도 음악에 맞춰 어깨와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며 입장한다. 우리나라 결혼식에서 버진로드를 차분하고 경건하게 걸어 들어가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프리카스러운 흥이 가득 담긴 입장이었다.

결혼 본식 현장. 500명에 달하는 하객들이 신랑 신부가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수정)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케이크 커팅식을 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보다. 가족들이 준비한 맛있는 인제라와 각종 고기 음식을 다 함께 나눠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디스코장’으로 변한다. 먼저 신랑 신부의 기념적인 첫 댄스를 시작으로 신랑 신부 들러리와 프로토콜이 무대에서 춤을 춘다. 이후 가족들이 합세해 다 함께 에티오피아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하객들 모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깨를 흔들어댄다.

나도 어깨너머 현지인 친구들로부터 이따금씩 배워왔던 에티오피아 전통 춤을 췄더니 가족들이 매우 기뻐하셨다. 내 이름에 자기들 가족 성(姓, Family name)을 붙여주면서 우리 가족 일원이라고까지 다른 하객들에게 소개하며, 나를 가만 쉬도록 두질 않았다. 에티오피아 사람보다 더 잘 춘다고 칭찬을 해주시니 나도 모르게 흥이 터졌는지 땀이 나도록 춤을 췄다.

아침부터 시작된 결혼식은 해가 다 진 저녁이 되서야 끝이 났다. 신랑 신부가 살게 될 신혼방까지 에스코트를 하고, 거기서도 또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노랫소리를 듣고 주변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 또 잔치가 벌어지는 거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얼마나 흥이 많은지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한두 시간이면 끝이 나던 우리나라 결혼식만 생각했던 내게 생각치도 못한 긴긴 하루였지만, 신랑 신부의 새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자리하며 노래를 부르고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그저 좋아 보였다.

결혼 본식 전 신랑신부와 들러리들의 사진촬영이 이루어진다. 사진에 없는 다른 친구들은 이곳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박수정)

언젠가 하게 될 내 결혼식 때에는 얼굴도장 찍듯이 왔다 가는 의례적인 결혼보다는 정말 모두 함께 축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 넘치는 자리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한 가족의 결혼을 한 동네의 잔치로 여겨 함도 들이고 음식도 서로 나누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소중한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에티오피아도 앞으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면서 지금 갖고 있는 이런 가족과 이웃 간의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소중한 문화들을 이어나갈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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