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굴렐레(Gulele) 지역 골목 양쪽으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진=박수정)

[뉴스인] 박수정 = 4개월 출장기간 동안 나는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지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친구들은 꼭 한 번씩 내게 ‘에티오피아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물었다. 내겐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강한 가족과 이웃 간의 유대’였다.

에티오피아의 크리스마스는 가족을 위한 날이다. 내 룸메이트는 가족 없이 혼자 있어야 하는 날 위해 그녀의 가족 저녁식사에 나를 데리고 갔다. 골목골목을 지나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 여동생, 남동생, 삼촌네 가족, 고모네 가족, 어린 꼬마 사촌들, 동네 사는 이웃이라는 사람들이 좁은 집에 바글바글 모여 나를 맞이했다. 가족들은 이미 나를 여러 번 본 사람처럼 내 이름을 친숙하게 불러댔다. 내 룸메이트가 이미 가족들에게 나에 대해 예전부터 많이 말해놓은 모양이다.

가족 중 한 분이 내게 꼭 줄 선물이 있는데 집에 두고 왔다며 갑자기 일어나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셨다. 귀찮게 먼 걸음 하셔야 할까봐 괜찮다고 손사래 쳤지만 막을 수 없었다. 차도 많이 막힐 텐데 한참 후에나 오시겠구나 했더니 그 순간 바로 선물을 들고 나타나셨다. 알고 보니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 말로만 듣던 ‘한 지붕 세 가족’이 여기 있었다.

그 동네 주변에 모여 사는 이웃들은 모두 가족이면서 이웃이고, 이웃이면서 가족이었다. 두 집 건너 사신다는 이모님도 내게 인사하겠다며 뛰어 나오시고, 맞은편에 살고 계신 할머니들도 나오셔서 내 손을 잡고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했다. 한 분 한 분 나와 인사하다 보니 어느덧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다.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인 매콤한 닭요리 도로왓(Doro wot). 주로 크리스마스 때 먹는다. (사진=recipeshubs)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크리스마스에 주로 먹는 전통 닭 요리인 도로왓(Doro Wot)을 만들고, 우리의 쌀과 같은 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Injera)를 만들었다. 내가 자기들의 소중한 가족인 내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으니, 나도 곧 그들의 가족이라는 말을 해주셨다. 에티오피아에 가족이 늘었다며, 배가 고프거나 그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 오라는 말과 함께.

한 집 사는 가족이건, 옆 집 사는 이웃이건 또 그 건넛집 사는 친척이건 이렇게 모두 모여 서로 가진 것 나누며 즐겁게 웃고 떠든 게 도대체 언제였나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크게 뭘 한 것도 아니었다. 함께 음식 만들면서 얘기 나누고, 흥겨운 전통 음악에 할머니도 어린 꼬마도 일어나 같이 어깨춤 추고 즐겼다.

에티오피아에서 끼니마다 먹는 쌀과 같은 주식 인제라(Injera). 테프(Teff)라는 곡식을 주재료로 발효해 만든 빵으로 각종 소스와 야채를 곁들여 먹는다. (사진=박수정)

이렇게 에티오피아 가족들과 깔깔 웃으며 떠들다 보니 한국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다. 한 집에 사는데도 서로 다르고 바쁜 일정으로 밥 한 끼 같이 먹기도 어려운 가족. 자고 있는 얼굴이나마 볼 수 있거나, 필요한 용건은 문자 한 통으로 해결하는 가족.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낫다’는 말로 이웃사촌이라 지칭하던 것도 이제 그 진정한 의미를 찾기 어렵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과 이웃 간 문과 문 사이는 더 가까워졌는데 관계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족해도 십 년은 살아온 내 동네에서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반면 아디스아바바에서 지낸 지 10일도 안 되서 동네 이웃들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동네 방앗간 청년들, 구멍가게 아저씨와 아주머니, 물을 파는 아주머니, 정육점 청년, 핸드폰 가게 아저씨, 은행 경비 아저씨와 인사하며 다니느라 출퇴근길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룸메이트가 식사 초대를 받았다며 이틀 뒤 저녁 시간이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누가 우릴 초대했느냐 물어본 나는 그녀의 대답에 한참을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릴 초대한 건 '내 룸메이트의 친구의 언니의 남편의 친구'란다. 도대체 몇 다리를 건넌 것인가?

한국에서였다면 이게 무슨 ‘오지랖’이냐며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 혹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가깝다. 왠지 개그프로그램에서나 듣던 대사 같기도 싶고. 난 한참을 웃고 나서, 이 정(情) 넘치는 초대에 기꺼이 응답했다.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 같은 이웃들이 보여준 끈끈한 정과 유대감, 이런 일들이 에티오피아에서 매일 매일 라이브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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