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홍 주필

[뉴스인] 박길홍 주필 =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형 양적 완화’에 대하여 국민의 허락을 구하기 전에 먼저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다. ‘한국형 양적 완화’란 해운, 조선을 필두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기업의 빚을 갚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기 위한 절대적인 필수선행조건은 재벌 오너일가의 배임, 횡령 등 편법, 탈법, 불법행위의 처벌과 그에 따른 징벌적 과징금을 개인재산에서 환수하는 것이다.

또한 부실대출로 국민에게 부담을 안겨 준 국책은행 등 금융권 관계자들에게 배임, 금품수수 등 형사적 책임뿐만 아니라 부실대출 결정에 대한 민사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들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에서 직무유기와 배임을 하며 국민세금으로 부실기업을 먹여 살렸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부실화돼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부실 채권은 지난 1년간 배 이상 늘어 이제 7조 원이 넘는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구조조정 자금 마련에 적극 동참할 뜻을 밝혔다.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하여 돈을 찍어서 국책은행에 공급하면 이는 모든 국민의 돈을 각출하여 재벌 오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능과 비리로 국민경제에 부담을 준 재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특혜를 주는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관치금융이다.

한편, 재정은 국민 세금이므로 이를 지출하여 부실기업을 살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긁어모아서 재벌 살림에 보태주는 것은 ‘경제정의’, ‘도덕적 해이’ 어느 면으로도 말이 안 된다.

안철수 의원이 ‘박근혜 식 양적 완화’에 대하여 ‘삼불가론(三不可論)’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1. 양적 완화에 앞서 그 동안 잘못된 경제정책에 대한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 2. 추가경정예산 편성, 공적자금 투입 등 다른 방법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3. 무책임한 일방통행식 통보가 아니라 국회와 대화부터 해야 한다”이다. 전반적으로 옳은 주장이나 이 중 추가경정예산,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 즉 국민의 돈이므로 이를 부실 재벌기업의 빚을 갚는데 마음대로 써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물론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1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사회안전망 차원의 대책이 구조조정에 선행적으로 꼭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라면 재정투입보다 ‘양적 완화’가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필수 전제조건 역시 부실기업 총수일가, 관련 금융권, 연루 정치인의 편법, 탈법, 불법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비리 액수의 최소 5배 이상의 과징금을 개인재산에서 환수하는 것이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은 지난 4월 22일 장마감 후 ‘자율협약 신청 공시’, 4월 25일 ‘산업은행에 자율협약 신청’으로 주가가 폭락하며 서민 투자자들이 하한가에 주식을 내 놔도 팔리지 않고 있는 와중에, 무슨 신통력이 있는지 그 직전 4월 6~20일 사이 최 씨와 두 딸이 보유하고 있던 전체 주식의 0.4%, 96만 7947주, 31억 원어치를 모두 장내매각하였다. 그리고 그저 우연의 일치였다고 무작정 우겨댄다. 순전히 확률 상으로만 보면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보다 최 씨가 한진해운, 산업은행 등 관련 금융권, 정치권 등에 뇌물 준 끄나풀에게서 내부정보를 입수해 팔았을 가능성이 수백 배 높다.

한진해운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각종 보유 지분과 사옥을 매각해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밝혔으나 채권단은 자율협약 신청안을 반려했다. 역시 자율협약을 진행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현정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한 반면, 한진해운은 대주주의 책임을 지는 모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에는 음으로 양으로 국민의 혈세가 엄청나게 수혈될 수밖에 없는데 제왕적 경영권을 행사해 온 총수일가가 보이는 작태는 위법성은 물론이고 그 무책임이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다. 세금 쓸 가치가 없는 인간들이다. 총수일가뿐만 아니라 잘못된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전(前) 경영진의 민사적, 형사적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문제는 청와대와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들었으나 아직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방향을 잘못잡고 있다. 구조조정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해운, 조선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시장 원리에 맡겨서 망할 기업은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은 성장하면 된다. 정부의 임무는 서민 채권자와 실직자 대책을 세우고 불법행위를 엄단하는 것 외에는 절대 나서면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살릴 기업은 살려 주겠다는 것이 바로 소위 관치금융·정책금융이다. 돈을 마구 찍어서 살아 난 재벌은 누군가에게는 리베이트로 뇌물을 줄 것이다.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은 꼭 필요하다. 그리스의 기간산업이 아직 해운, 조선, 정유 등 저부가가치 하드웨어 산업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국가 재정파탄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우리나라가 똑같다. 인류문명이 인류 탄생 이후 최초로 철기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대인식에 둔하여 아직 중후장대형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다. 그리고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한 것에 만족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은 바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활성화하는 토대를 제공하고 물꼬를 터주는 데 젖 먹던 힘까지 다 하는 것이다.

‘한국형 양적 완화’ 역시 청와대와 정부가 방향을 잘못잡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양적 완화’로 특정기업 특혜 차원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아니라 보편적 목적을 위한 ‘한국형 사회안전망’을 창조하는 것이 1순위이다. 소비의 저변 확대와 더불어 내수부양 효과도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지금 서민의 노후 생계대책인 사회안전망을 건설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 복지는 현재 선진국들의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민 99%는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암담하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로 치솟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안정되고 즐거운 노후를 계획할 방도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중추는 국민연금이나 대부분의 서민이 쥐꼬리만 한 연금(2015년 말 기준 전체 수령자 평균 월 32만원, 20년 가입자 평균 월 87만원)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서민이 별도의 노후 대책을 준비하는 것도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사상 최고로서 과다한 가계부채가 촉발한 2008년 세계경제위기 시절의 미국보다도 훨씬 높다. 퇴직 후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면 그나마 있는 재산을 다 처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소득층으로 전락하여 연금으로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는 삶의 질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현재 부익부빈익빈이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악으로 OECD 최고 수준이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전체 자산 중 최상위 1%가 25.9%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위 50%의 몫은 몽땅 합쳐도 1.7%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양극화는 나날이 더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부유층은 노후 생계의 절박함이란 개념조차 없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국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재정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창조적 모델로서 ‘양적 완화’로 사회안전망 구축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즉 ‘양적 완화’로 복지 재원을 충당하고 보험료조차 못 내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사각지대도 해소해야 한다. 또한 국립공원 등 개발제한구역 사유지에 장기저리(30년 연 0.5%) 토지담보부채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발행을 허용하고 전수 매입하는 것이다.

이는 복지와 경제 활성화의 윈·윈 전략일 뿐만 아니라 공익을 위하여 짓밟힌 인권 즉 독재의 잔재를 다소나마 청산하는 길이기도 하다. 서민 소비여력 증대, 내수 활성화, 원화 약세, 수출 가격경쟁력 증대, 해외 명품 가격 인상으로 토착 브랜드 성장 여건 조성, 외국인 투자 증가, 해외관광객 증가, 기업수익 증가의 선순환적 경제 효과가 예측된다.

화폐가치가 하락할 것이므로 외환시장에 행여 들킬라 몰래 개입하며 선진국과의 환율전쟁을 방어하는데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경제 현안이 단칼에 해결되는 것이다. 한편 내수부진으로 인한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양적 완화’의 충격을 흡수할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은 화폐가치 하락으로 2016년 말 10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사내 유보금의 현금 가치가 떨어질까 봐 근시안적 탐욕에 눈이 멀어 재벌이 적극 반대할 수 있으나, 시간이 가면서 경제활성화로 인한 기업수익 증대로 그들도 더욱 부자가 될 것이다.

여·야 모두 소속 계층의 이익 극대화나 선거용 포퓰리즘을 떠나 수천만 서민이 평생 열심히 일하면 노후가 보장된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진정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사회안전망의 백년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계층간 기회와 자산의 공정한 분배 및 화합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야권도 부실기업 및 국가기간산업 구조조정 대책은 물론이고, 민생 대책 차원에서 ‘양적 완화’로 복지를 시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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