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헬레나 유 = 본인의 작품과 매우 유사한 작풍을 가진 그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대형 아트쇼에 출품되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황스러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울 따름인데, 비근한 예로 하태임 작가의 띠 작업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 국내 아트페어에 출품된 경우도 있었고, 인도네시아의 어느 작가가 권경엽 작가의 작업을 오마주 했다면서 싱가포르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사례도 있었다.

얼마 전 어느 작가로부터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이 그림 대표님 보시기엔 어떤가요?"

한눈에 봐도 그 작가의 고유한 작풍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해당 작가뿐 아니라 다른 작가와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평론가들 중에서는 동시대 미술 작품들 상호간의 유사성에 대해 꼭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이들도 있고, 국내에서는 미술 작품에 대한 저작권 보호에 관한 법률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미국에서는 작가의 스타일을 따라 한 것 만으로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되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과연 다른 작가의 스타일을 본인 작품에 그대로 차용하여 작업을 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는 일인 것일까?

다음은 윤기원 작가가 본인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내용이다.

내용인 즉, 국내 모 대학 교수이자 박물관장인 A씨가 윤기원 작가에게 본인이 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인 곳에서 그룹전을 하자는 제안을 했었고, 여건이 맞지 않아 해당 그룹전에 윤기원 작가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원 작가의 작품과 매우 유사한 작업을 A씨가 본인 페이스북에 포스팅 했으며, 이에 대해 윤기원 작가가 문제를 제기하자 "팝아트 장르란 다 그런 것 아니냐. 연장자에게 이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며 페이스북 친구를 끊어 버린 것이다.

당시 윤기원 작가는 이 사안의 파장이 그리 크지 않으려니 생각을 하고 넘겼으나, 이후 다른 작가와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

윤기원 작가의 작품
A씨의 작품

위의 두 작업에 대해서는 굳이 어떠한 부분이 유사하다는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혹자는 외적인 스타일의 유사성을 꼭 문제 삼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 유사성이 작가 본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남의 작풍에서 가져온 것이라면, 그것도 본인이 영향을 받은 작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이미 작고한지 오래 된 사람이 아닌 동시대 작가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일 텐데, 미술품 감정사 자격 제도도 없고 대형 갤러리에서 옥션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의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그러한 제도적 장치가 빠른 시일 내에 마련된다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의도적으로 윤기원 작가의 스타일을 따라 한 것인지, 이러한 결과물이 탄생한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는 A씨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만일 A씨가 윤기원 작가의 작품을 보고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본인 작품에 그러한 스타일을 적용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시도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 조차 없다면 이는 매우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윤기원 작가의 언급대로, 지금 당장은 이러한 일이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저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언젠가는 본인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그저 남의 일이라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기성 작가들은 본인의 고유한 작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다른 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해 만들어낸 창조적인 결과물을 본인 작품에 도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당면한 지금, 당신의 작품은 안전한가?

*헬레나 유(Helena Yoo)는 헬레나앤코의 대표 아트디렉터로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품에 관해 소개해오고 있다. MTN TV '미녀들의 주식수다'에서 외환 및 주식 시장에 대한 해설을 했으며, 국제회의 통역사 및 진행자로 활동하며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갖고 현재 칼럼니스트, 작가, 아트디렉터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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