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홍 주필

[뉴스인] 박길홍 주필 = 북한은 2016년 새해 벽두 수소폭탄 핵실험 발표 시 공격목표는 미국임을 천명하며 대한민국은 거론조차 안 했다. ‘네게 대한민국의 위상은 미국의 추종세력 중 하나일 뿐인가’라는 악몽이 엄습한다.

더욱 속상한 것은 한반도에서 수소폭탄이 터졌는데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메인이 아니었다는 ‘충격 실화’였다. 오바마가 수소폭탄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 전화한 사람은 ‘외교의 달인’ 박근혜가 아니라 ‘친구’ 아베였다.

박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잘 아는 시진핑 중국 주석하고 이 국가적 최고 위기상황을 세계평화적 차원에서 즉시적으로 상의하고자 조속히 통화를 시도했으나 바쁜 일이 있는지 연결이 안 됐다.

장관 선에서 해결하고자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중국 외교부 장관에게 즉시 전화를 넣었으나 통탄스럽게도 통화 예약이 이미 꽉 차 있어서 줄서서 기다려야 했다. 불안과 초조에 떨던 이틀 후 어둠이 찾아와서야 중국 외교부 장관과 통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시진핑의 리턴 콜(Return Call)은 없었다.

2015년 9월 3일 중국의 군사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 옆의 옆에 섰다고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온 나라가 박 대통령의 쾌거를 칭송하며 흥분의 도가니였다.

‘모든 선진국에서 정상은 물론 주중대사까지 불참하고 북한마저도 2선급이 참석한 가운데, 시진핑의 옆의 옆에 선 것이 특별대접인가?’라는 논란은 차치하고, 중국의 특별대접은 지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중국이 현재 군사패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한·미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소위 맹방이고 장차 중국·러시아 동맹과 패권싸움을 벌일 수도 있는 한·미·일 동맹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참석 그 자체가 그들의 ‘군사굴기’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더욱이 한민족의 통일문제를 이민족인 중국과 심도 있게 상의한다면 그것은 세계 속에 중국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광고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장면에서 워싱턴 정가와 일본은 ‘블루 팀(아군 진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레드 팀(적군 진영)에 있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패권경쟁 속에서 한국의 국익을 위한 외교가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드’의 대한민국 배치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중·미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에 배치된 ‘사드’ 역시 주 공격목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군도 중국군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난감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본의 아니게 남의 나라 전쟁의 희생양이 되면서 참혹한 전쟁터가 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데자뷔(Deja-vu)’이다.

이러한 시점에 박 대통령이 미·중 간 균형적인 실리 외교를 펼치며 남북 위상이 역전되는 것처럼 보여서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에 대하여 중국이 압력을 넣어 줄 것이라는 꿈을 꾸다가 불과 4개월 만에 깼다.

북한과 무력 대치 중인 우리나라로서는 현재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중국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 이러한 포부는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맺은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꽌시(關係)에 의하여 순항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중국은 한반도 분쟁에 관심은 있지만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얽히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지뢰 도발로 점화되었던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남·북 모두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누군가 자신들에게 자제하라고 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기분 나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 언론은 대한민국의 계략에 말려 북·중간의 불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이라며 앞을 다투어 반기는 분석들을 내놓았다.

중국은 우리나라 언론의 분석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북한이 중국 열병식 참석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불편하고, 그저 신경 쓸 일만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인 것으로 사료된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을 냉철히 해부해보면 중국에게는 남·북한 모두가 친구이며 한반도와 관련해 자신들의 최대 이익은 안정과 평화다. 지당하다. 어느 나라건 생기는 것도 없이 인접국에서 전쟁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민문제 등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기에 핵폭탄이라도 터지면 최악이다. 중국이 북한 핵에 대하여 적극적인 제지보다 UN 결의안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잃어나는 것이 싫은 것이지 북한이 싫다는 뜻은 아니다. 방사능 낙진도 큰 문제고 경제적 제국주의시대에 경제가 파괴되면 정복할 경제가 없어진다. 이와 동시에 동북아, 특히 대만으로의 핵 확산 도미노를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 싫어하는 것이 미국과 세계 군사패권을 다투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동맹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핵 개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중국 사람들도 헷갈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중국은 지하자원 부국인 북한을 좋아한다. 현재 원시 물물교환 국가 북한과 무역거래의 대가로 북한 광산들의 사용권을 장기계약의 형태로 상당수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그들의 ‘동북공정’ 논리는 북한과의 형님·아우 관계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과 중국이 허심탄회한 친구가 되는 것은 일단 좋은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중·러와 미·일간 세계패권경쟁이 점입가경인 현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하는 북한을 진심으로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중국 입장에서는 대 미국 동부전선의 최전방 수비수를 자처하는 듬직한 북한을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물론 남중국해 남부 해상에 있는 ‘난사군도(Spratly 군도)’를 둘러 싼 미국과의 분쟁에서 ‘레버리지(Leverage)’로 이용할 가능성은 있다. 반면, 미국의 절친(best friend) 일본은 북한 핵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으므로 당연히 등골이 오싹하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든 상관없이 더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싫어한다. 중재를 할 수도 있지만 남·북한 갈등의 해결은 너무 어려워 머리만 복잡해질 뿐 아니라 일단은 제3자의 일이다. 중국은 강한 힘과 실력을 배양하며 묵묵히 대인(大人)의 길을 갈 뿐이다. 이 때 누구라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자는, 더욱이 손해까지 끼친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일 한반도 문제에 중국이 몸소 발을 담가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후 모든 사태의 책임은 남·북한 모두가 질 각오를 해야만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영토를 담보로 마음을 달래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꿔 물어보자. 만일 어떤 나라가 우리에게 옆 나라가 부당하고 무식하게 괴롭히니 도와달라고 한다. 그래서 약 100조원의 돈과 수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도와줬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므로 아무런 대가 없이 세계평화만을 위한 희생을 치르겠는가?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이 우리나라 전쟁을 막아 주지는 않는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한반도 통일에 적극적인 방해만 하지 않으면 그걸로 고맙다. 역사적으로 세계평화와 정의란 단지 국익 증대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외교란 상호 국익증진을 위한 거래다. 즉 윈·윈 기반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인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는 수단은 당근과 채찍이다. 우리의 외교적 무기는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외교적 목적 달성을 위한 기본기는 무엇보다 국력이다. 힘이 없다면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점잖고 평화롭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정의와 평화정신에 던지는 호소로 심정적 공감은 얻겠지만 현실적 국익과 협조라는 외교적 성과는 얻기가 쉽지 않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자국의 이익 외에는 모두 남의 일이기 때문에 관심 갖는 척만 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에게도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키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힘없는 평화는 굴종을 선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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