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백석우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배우 오동식

[뉴스인] 박소혜 기자 = 2008년 한국인의 ‘애송시 100편’을 담은 시집(민음사)이 발간됐다. 김수영의 ‘풀’, 한용운 ‘님의 침묵’과 같은 잘 알려진 작품 속 낯설지만 인상적인, 그래서 누군가 100편 중 단 한편을 꼽으라면 단연코 내세울 시가 있었으니 바로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이었다.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백석은 평안도 남쪽 신의주 유동 지역 박시봉네 방을 얻어 살며 이 시를 썼다. 애달프게 서럽게 위안을 주는 이 시는 산문체이면서도 운율지게 읽힌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위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읊조리며 되새기면 될 줄로 알았던 백석의 시가 연극으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명 ‘백석우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연희단거리패가 판소리, 정가 등을 입혀 제작했다. 교과서에 실렸던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장인물이 모두 나온다. 나타샤와의 애틋한 사랑만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남과 북 경계인간 백석의 인생이 펼쳐진다.
백석 역할을 맡은 배우 오동식 씨를 세밑에 만났다. 그는 “그동안 백석이라는 시인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죄책감을 만회하고 사죄하는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백석은 잘생기고 인기 많은 모던보이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절 예술을 하기 위해 아픔을 안고 살아갔던 시인이다. 우리 사회가 예술과의 경계선에서 얼마나 마찰이 많았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1912~1996)은 남과 북 모두가 탐낸 시인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살았다. 친일을 피해 만주로 떠나 한때 시를 끊었고 살기 위해 선동적인 글을 썼지만 사상성을 의심받아 유폐된 삶을 살았으며 남에서는 월북시인이라는 금지된 이름을 얻었다.
오동식 씨는 “남북 모두 이념대립 속에 백석의 시를 이용가치로 봤다. 북에서는 체제정당성을 말하는데 이용했고, 남에서는 유명세를 이용했다. 백석은 1989년 해금돼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그 사이 백석은 월북작가라며 이름이 00으로 처리되는 웃지 못할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고 했다.
“10월 서울 초연 때 일이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80명 학생 단체관람이 예정돼 있었는데, 공연 당일 교감선생님이 전화해 취소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월북작가 이야기를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듣고도 놀라 믿을 수 없었다. 백석은 월북작가도 아니지만(재북작가), 월북작가라면 왜 볼 수 없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뭐라고 설명할지 궁금했다.”

이 공연명에는 ‘우화(寓話)’가 들어간다. 백석이 북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산문이 ‘이솝우화’다. 모든 잘못된 것은 인간의 혀끝에서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빗대어 썼다가 백석은 다시 유폐된다.
오 씨는 “백석 시인의 삶을 통해 우리 현실을 빗대어 볼 수 있다. 우화는 현실에 대해 손을 내미는 장치다. 우화라는 말을 통해 이 공연이 백석만 다뤘다기보다 현실에 대한 시야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반평생 삼수갑산에 틀어박혀 시를 썼으나 자신이 쓴 시를 어쩌지 못해 스스로 불태워 버리는 운명인 백석. 무대 위 백석은 관객을 절절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감정의 폭이 큰 백석을 연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듯 느껴진다.
배우 오동식은 “연기는 거리를 두고 객체로서 해야 하는데 내 자신과 백석 역할과 극장 무대 등이 현실로 합쳐지는 때가 있다. ‘붓을 총창으로’라는 공개편지 형식의 수필에서 백석이 남쪽에 있는 친구에게 소리를 치는데, 이는 내 자신에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자조하고 자학하는 모습에서 진짜 감정이 드러나 배우로서는 창피하다. 백석 역시 친구에게 그런 (북의 체제선전) 글을 썼으니 얼마나 창피했겠나. 맨얼굴로 말 못하니 가면을 쓰고 다시 올바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백석의 상황과 나의 창피함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했다.

연극 ‘백석우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지난해 8월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된 뒤 10월 서울에서 공연됐고, 지난 연말부터 오는 17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앙코르’ 공연되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은 연극의 음악성을 한껏 살렸다. 서도소리와 정가 등이 백석 작품을 노래한다. ‘내 이름 예솔아’로 알려진 소리꾼 이자람이 ‘여우난곬족’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 2곡을 작창했다.
오씨는 “이자람씨가 ‘남신의주’는 척척함에 묻혀서 힘들게 작곡했다고 들었다. 이자람밴드에 있던 권선욱씨가 전체 음악을 작곡했다. 백석의 산문을 음악 없이 읽으면 지루할 지도 모른다. 좋은 소리가 나야 감동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올곧고 찰진 백석의 글에 곡이 얹히니 그대로 음악이 됐다. 경계인(人) 백석이 시에서 연극으로 경계를 넘어왔다.
“굴은 저 혼자 자라간다. 굴은 엄마 아빠 없이 저 혼자 자라간다.…굴은 이렇게 살며 사나운 고기가 와도 무섭지 않다. 굳은 껍지를 꼭꼭 닫으니까, 세찬 물결이 와도 무섭지 않다. 굴은 껍지를 꼭꼭 닫으니까, 굴은 가엾구나, 그러나 굴은 용하구나!”(백석 동화시 ‘굴’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