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홍 주필/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노년기 생계대책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국민 99%는 자신이 없고 암울할 뿐이다. 최저 생활로 목숨을 부지하며 죽지 못해 사는 것은 삶의 의미가 없다. 삶의 질과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때 장수가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2015년의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후 고도성장의 진정한 주역인 노인층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이분들께 매달 20만 원쯤 던져 줄 뿐이다. 서민의 피와 같은 국민연금을 재벌에게 뇌물로 바치는 분까지 있어 더욱 우울하다. 이제 정부와 재벌이 빈곤한 서민들에 공적자금을 투여할 차례이다.

생계대책보다 더 큰 문제는 인생의 존엄성과 가치에 관한 것이다. 영혼을 가진 고등동물로서 삶의 목적과 보람에 대한 고민이다.

60대는 몸과 마음이 청춘이다. 자신의 창조적 잠재역량을 구현하여 가치의 창조를 완성하는 내 인생 최대의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그 동안 가족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에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 왔다. 부가가치 창조로 국가성장에 조금이나마 더 일조하고 싶다.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이 분들의 노하우와 경륜을 생산성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일자리는 정말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2014년 81.8세로 20세가 증가하였다.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인 고령화율이 2014년 현재 12.7%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악화했다. OECD의 2015년도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우 낮은 수준이다.

개인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는 OECD 34개 회원국과 러시아, 브라질을 포함한 36개국 중 29위였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사회 관계망'(2014년)도 꼴찌였다. 즉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친척이 있는가?'의 질문에서 꼴찌였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그 분이 안 계셨다.

희망 없는 황무지를 너무 오래 방황하셨던 탓일까. 자살 건수는 인구 10만 명당 1983년 8.7명에서 2013년 28.5명으로, 이혼 건수는 인구 1000명당 1970년 0.4건에서 2013년 2.3건으로 크게 증가하며 현재 OECD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는 원래 제대로 구축이 안 된데다 그나마도 노인층을 책임지기가 어렵게 인구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청년의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경제 환경으로 저출산이 지속되며 15세 미만 인구가 1955년 41.2%에서 2014년 14.3%로 엄청나게 감소하였다. 그 결과 국가 잠재성장률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층을 먹여 살릴 경제인구의 절대수가 부족하다.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노후 생계대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서민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다. 양극화의 심화로 소득 상위 20%의 수입이 하위 20%의 6배이다.

저축이 힘들고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도 취업을 못 하는 경제상황에서 은퇴 후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다. 우리나라 실업률의 정부발표 통계는 OECD 최저 수준이나 그나마 숫자에 불과하다. 실질 실업률은 월등하게 높다. 취업에 끝내 실패하여 먹고 살려고 시작한 영세자영업자가 매달 적자에 시달려도 취업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은퇴하면 조그만 가게나 하나 하지 뭐.’ 큰 일 날 소리다. 서민 자영업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인데다 경제불황으로 수익구조가 열악할 뿐만 아니라 노른자위 상권은 모두 재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2~3년 버티다가 망하는 경우가 3분의 2 이상이다.

과다한 세금도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통 보수우파 정부의 자칭 ‘3차산업 활성화 대책’ 중 서민 3차산업 활성화 대책은 없다. 재벌이 아직 빼앗지 못한 영역을 재벌에게 바치는 대책은 있다. 중소기업도 문자 그대로 어렵다. 이제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은 재벌 관계망만 부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서민은 후진국형 빈곤의 지표로서 식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지수’가 매우 높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 개인파산 위험 수준이다. 당연히 저축이 불가능해 노후생계대책으로는 문자 그대로 쥐꼬리 연금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복지가 국민을 게으르게 할까봐 교육적·인도적 차원에서 추진하지 않고 있다. 벤츠 마이바흐, 벤틀리 등 서민 집 한 채 값인 3억 원이 넘는 고급 승용차를 수개월씩이나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슈퍼부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계층의 벽이 경제·사회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년층 대책으로는 먼저 성장 참여를 통한 복지를 위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요구된다. 그 다음으로 사회보장제도의 구축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어 노후생계대책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구조와 환경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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