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헬스】고선윤 논설위원 =  주부로 산다는 건…. 나를 위해서 찬장 속 예쁜 커피 잔을 꺼내는 일이 없는 것. 나만을 위해서 밥상을 차리는 일이 없는 것. 뽀송뽀송한 새 수건 꺼내서 쓰는 일이 없는 것.
 
이런 말을 하면 친정엄마는 많이 속상해한다. “여자 팔자 만들기 나름이니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런데 우리 엄마 역시 평생 자신만을 위한 상을 차리는 모습 못 보았으니 어쩔 수 없는 모녀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위안일 뿐이다.  

바쁜 아침시간 시시각각 먹고 나간 자리에 나 홀로 남아서 신랑이 남긴 밥, 아들이 남긴 국에 밥을 더하고 국을 더하고 아침을 때우는 일도 많다. 몇 조각 남은 김치는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먹는다. 이렇게 식사를 위한 식사인지 설거지를 위한 식사인지 모르는 건 아침만의 일이 아니다.

상을 차리고, 아니 누가 차려준 상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모여서 먹다보면 아주 조금 남겨지는 음식이 생긴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이면 접시를 비울 수 있는 것들이다. 밥을 다 먹고도 나는 그것을 찾아서 수저를 움직인다. 깨끗하게 비워야 설거지하기 편하다는 생각에 나의 손은 충실하게 움직인다.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이제야 내 시간이라고 소파에 몸을 던져 TV리모컨을 찾을 때도 주부는 소박하다. “커피 한잔 마셔야지”하면서 좀 전에 마신 물 잔에 믹스커피 두 봉지 뜯어 달콤함을 즐긴다. 티스푼 꺼내는 일 없이 눈앞의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하나 잡고서 젓는다. 설거지 한다고 눅눅해진 티셔츠는 조금 불편할 뿐 갈아입을 정도는 아니다.

탕에 물을 담고 목욕하는 날은 유독 바쁘다. 아들 먼저, 딸 먼저 씻고 나오라고 떠미는 건 내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미지근해진 물에 잠시 몸을 담그고 손빨래니 목욕탕 청소니 이 날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들이 가득하다. 수건을 쓸 때도 수납장 안 새 것을 꺼내는 일은 언감생심 생각도 않는다. 누군가가 쓰고 던져둔 수건을 찾아서 얼굴을 닦고, 그 수건으로 세면대의 물기도 수도꼭지의 얼룩도 닦아낸다. 

나도 홀라당 양말을 뒤집어 벗어 소파 밑으로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데 어쩌나 어차피 내가 주워서 빨아야 하는 내 일인지라 곱게 들고 세탁 바구니 속으로 넣는다. 효자손 들고 침대 밑이니 책상 밑이니 흩어진 짝짝이 양말 찾아다니는 일 누구도 대신 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올해 스포츠센터의 회원이 되면서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깔끔하게 정리된 체육복과 양말을 날름 가져다 입고, 땀도 나지 않을 정도 러닝머신을 걷고는 아무렇게나 벗어서 세탁 바구니를 향해 던진다. 바구니에 쏙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서 나는 뛰어가서 주워 다시 바구니에 담는 그런 바른생활 회원이 아니다. 여기서만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주변의 눈을 의식하고 양심이 살짝 떨리기도 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인 척, 둔해서 모르는 척 그 자리를 벗어난다. 

뽀송뽀송한 하얀 수건을 양손에 한 장씩 들고 머리를 훔치고, 몸을 닦는다. 그리고는 역시 훅 던진다. 두 장을 쓰고도 모자라다고 한 장 더 손에 들고 머리에 남은 물기를 닦아낸다. 최고의 사치다. 이것을 뒷정리해야 하는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쾌감을 즐긴다.

나도 이런 호사를 누려왔던 사람이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이며 누릴 수 있다고 자만한다. 여기서 나는 주부가 아니다. 내가 던진 수건은 누군가가 주워서 세탁하고 다시 깔끔하게 정리되어 나온다. 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대자보 하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타월 1장 사용하기 ‘그린나눔 캠페인’이라는 것을 한다는 거다. 타월 사용량을 줄이고 절약된 금액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눈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1인 평균 타월 사용이 0.11장 절감되어 19만 2,030원 기부금이 적립되었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타월 세탁비를 줄이고 그 만큼의 돈을 기부한다는 뜻이다. 캠페인을 통해 모은 후원금으로 지역 취약계층 독거 어르신께 쌀이랑 영양제 등을 선물했다는 내용도 있다.  

좋은 일이다.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수건인지 모르겠다. 기사가 모는 외제차를 타고 오는 회원도 있고 명품 가방에 꼬부랑글씨가 적힌 화장품을 담아 오는 회원도 많으니 거창하게 기부금 조성을 해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일도 많고 많을 텐데 왜 하필이면 수건일까. 이건 완전히 보여주기 위한 캠페인이라고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머리에 감았던 눅눅해진 수건을 풀어서 알뜰하게 물기를 훔친다. 뽀송뽀송한 수건 한 장 더 탐이 나지만 이 정도야 나도 협조해야 하지 않을까. 사용한 수건은 보지도 않고 바구니를 향해 툭 던진다. 애라 모르겠다, 이 정도는 허락되겠지. 여기서는 주부가 아니고 싶었다. 몇 발자국 가다가 그래도 뒤가 켕겨서 한번은 돌아본다. 내가 던진 수건이 세탁 바구니 속으로 제대로 들어갔는지.

‘그래. 주부는 주인이라는 뜻이지. 주인은 나보다는 가정을 그리고 이 사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잖아.’ 이런 혼잣말을 하면서 다음달 1인 평균 타월 사용이 얼마나 절감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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