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이자 바리톤 성악가로 왕성한 활동 중인 정경 박사(Ph.D). 그가 무릇 예술인의 삶이란 어떤 것이며, 나아가 고전 예술인이 현대 사회를 수놓은 자본주의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지를 뉴시스헬스 [예술상인] 칼럼을 통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서울=뉴시스헬스】정경 논설위원 =  몇 년 전, 한 공연 무대에 초청받아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연주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공연 당일, 내 다음 순서에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있는 여성 가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미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함께한 터라 나는 그녀의 목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에는 잘 소화해내던 음역에 도달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떨리고 갈라졌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연습이 과했던 탓이었을까.

공연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까지 더해져 사색이 된 그녀는 자신의 원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급기야 그녀의 매니저가 내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 연주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기술적인 조치나 민간요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해낼 수 있다'는 심적인 안정을 되찾는 일이다.

나는 용기와 위안의 말을 건네며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그녀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애썼다. 다행히 자신감을 회복한 그녀는 그날 자신이 보일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내보이며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그 일이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비단 동료 예술인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는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과연 무엇이 한 예술가로 하여금 완벽한 무대를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한참을 숙고했다.

돈이나 명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술인의 그러한 간절함이 예술가의 이름으로 누리고자 하는 개인의 영달(榮達)일 뿐이라고 잘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대를 준비하는 예술인의 마음가짐은 단순히 공명심이나 사리사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예술인에게 있어 사회적 성공이란, 최고 수준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 이바지했을 때 이따금씩 따라오는 ‘부가적 요소’일 뿐이다. 고래(古來)로부터 뛰어난 예술가들은 신묘(神妙)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 결과물이 가져다 줄 부(富)나 명예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예술인에게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슴 속 최우선 순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조한 컨디션에 애를 태우던 여가수의 절박한 마음도, 매일같이 성대를 혹사하며 무대를 준비하는 나의 열정도 모두 일관되게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객석에 앉아있을, 스크린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이다.

‘환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매우 기뻐함’, 혹은 ‘큰 기쁨’이라고 되어있다. 삶에서 환희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노래의 힘을 믿는 성악가로서, 또 예술의 힘을 믿는 예술인으로서,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영혼을 울리는 예술작품과 조우했을 때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 예술가에게는 누군가의 삶과 공명(共鳴)하는 동시에 그에 환희를 부여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마치 사명처럼 부여되어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노래한다. 객석에 앉아 있는 당신을 환희로 가득 채우고자.

※본문의 저작권은 영혼의날개 미디어와 뉴시스헬스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