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가지라는 '인절미'부터 외국인 좋아하는 '초코설기'까지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전경. 민경찬 기자 krismin@newsin.co.kr
쫄깃쫄깃한 찹쌀떡에 고소한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는 최근 빙수에 올라가는 고명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 인절미는 시집간 딸에게 인내심을 갖고 조용히 살라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떡이란다.

추석 대표 음식으로 알려진 '송편'에는 자녀가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축하하는 부모의 마음이, 흰 떡과 붉은 팥이 켜켜이 쌓인 '시루떡'은 이웃에게 층층이 마음을 돌린다는 의미로 이사할 때 이웃과 나눠 먹었다.

마치 할머니가 "옛날 옛적에"하며 전래동화를 읊어주는 것 같은 이곳은 서울 종로구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안에 위치한 '떡 박물관'이다.

떡집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떡부터 명절 제사상에 올라가는 떡, 일본 화과자(和菓子) 같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떡까지 다양한 떡의 종류와 문화를 소개하는 떡 박물관에는 매년 1만 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지난 2002년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이 교수 시절 수집했던 모형 떡과 조리기구들을 한데 모아 개점한 떡 박물관은 지난 2013년 3월부터 3년간 서울시 교육청의 '서울 학생 배움터'로 지정받았다.

절기별로 전시된 떡과 음식은 색감에서부터 계절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봄을 알리는 삼짇날에는 진달래 화전에 진달래술을 곁들여 먹었고, 음력 6월 보름인 유두(流頭)엔 찹쌀가루를 송편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지진 '주악'과 백설기를, 햇곡식과 과일이 풍부한 추석에는 감자를 갈아서 넣은 감자송편부터 모시조개 모양으로 빚은 조개송편, 오색송편 등 다양한 종류의 송편을 빚었다.

각 지방별, 종류별, 시대별로 분류된 수십 가지의 떡 모형은 모양과 빛깔이 실제와 흡사해 군침이 돌 정도다. 이밖에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평생 거쳐야 하는 전통의식인 통과의례 상차림도 재현됐다.

▲ 퓨전 떡 꽃띠, 꽃바람떡, 태극절편, 보슬단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떡 박물관 제공) 국윤진 기자 kookpang@newsin.co.kr

윤숙자 소장은 "외국인들은 보기도 예쁜데 그 안에 의미가 담긴 게 신기하다고 말해요. 심지어 떡에 무늬를 찍어내는 떡살에도 장수, 행복, 부귀 등 하나하나 담긴 의미가 재미있고, 어떻게 지금까지 제사 문화를 유지하는지 궁금해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SPC 그룹의 프랜차이즈 떡 카페 '빚은'이 110여 개 매장을 내며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면, 윤 소장은 '교육'을 통한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을 뛰어넘어 '직접 먹어봐야 안다'고 얘기하는 그는 떡 만들기 프로그램을 매일 3회 이상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2001년부터 박물관 1층에 떡 카페 '질시루'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절구에 찧어 직접 떡을 만들어본 관람객들은 질시루에서 새콤한 오미자차와 어울리는 떡을 맛본다.

쫀득쫀득한 초코설기를 한 입 베어 문 외국인이 "딜리셔스(delicious)"를 외친다. 미국의 초콜릿 디저트 브라우니(brownie)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오히려 브라우니보다 더 부드럽고 쫄깃하다.

향기로운 커피 향이 감도는 에스프레소 찰떡, 보리 향이 향긋한 보리 찰떡, 예뻐서 먹기 아까운 매화떡부터 빵 대신 떡으로 만든 치즈 떡 샌드위치 등 선물용으로도 간식으로도 먹기 좋은 떡들이 한가득 판매되고 있다.

그중 '흑미 영양찰떡'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맛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 생일에 질시루표 흑미 영양찰떡 세트가 청와대 직원들에게 전달됐으며, 지난달 29일에는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들이 "전통음식에 대해 공부하겠다"며 윤 소장의 저서 여러 권을 가져갔단다.

바야흐로 전통음식을 통한 '한류'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국 사람인 우리부터 전통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것보다는 해외 문화를 잘 아는 게 세계시민이라고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막상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 전통을 잘 아는 게 중요해요. 특히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에 오는 부모 중에는 숙제용으로 사진만 찍고 가거나 아이들이 뛰어다니게 그냥 놔두는 분들이 많은데, 어른들 먼저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바라보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